Greece 성경지리 탐방 후기 (3) – 2023. 5.11

고린도의 항구도시 겐그레아에 세워진 교회, 그리고 사도들의 동역자 – 여집사 뵈뵈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 우리 자매 뵈뵈 (Phoebe)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로마서 16:1)

“바울은 (고린도에서 1 년 6 개월 간 머물며 집중 사역, 교회를 개척하고) 더 여러 날 (얼마 간)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사도행전 18:18)

겐그레아 (Cenchrea, Kenchries)는 옛 고린도성(Temple of Apollo, 아폴로 신전을 중심으로 하는, 아가야 총독 산하 최대 도시 Archea Korinthos) 으로부터 약 15 킬로 떨어져 있는 항구도시였습니다. 지도에서 보이는대로, 해안가 겐그레아에서 왼편 위쪽 내륙에 위치한 고린도 옛 성터까지차로도 15 분 정도 걸렸습니다. 세계 3 대 운하 가운데 하나인 고린도 운하 (Corinth Canal)는 길이가 8 킬로미터 인데, 지도에서 겐그레아 (Cenchrea)의 영어이름 첫 자인 C 자 부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신 고린도시는 겐그레아 반대편 위쪽 해안에 제법 큰 도시로 형성이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신고린도시에서 첫째 날 밤을 지내고 이튿날 아침에 먼저 10 분 거리의 고린도 운하를 잠시 둘러 본 뒤에 다시 10 분 정도 아래 쪽 겐그레아 해변으로 갔습니다.

저는 사실 이번에 고린도를 직접 방문하기 전까지는 고린도가 현재의 고린도 운하를 중심으로 양쪽에 걸쳐 형성되어 있지 않았을까 상상을 했는데, 막상 가보니 고린도 운하는 도시 중심이 아닌 한켠에 자리하고 있었고, 특히 성경 사도행전과 고린도전후서의 배경인 옛 고린도성도 바닷가에 자리한 것이 아니라 해안에서 내륙으로 30 리 정도 들어간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고대 주요 도시들 (아테네, 고린도, 빌립보, 그리고 데살로니가)이 대부분 바닷가 해안에 위치하지 않고 내륙으로 이,삼십리 들어가서 세워진 것은 외부의 세력들이 바다를 통해 침입해 오는 것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었음을 이번에 가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큰 도시들이 내륙의 높은 산을 배경으로 하는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하는 동안 그 도시마다 반드시 가까운 해안도시를 갖고 있었는데, 큰 성 고린도의 해안도시가 바로 겐그레아였습니다.

고린도 운하

[바닷가 도시 겐그레아의 옛 터] 지금은 인구 300 명 미만이 사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지만, 배가 주요 교통수단이던 고대와 신약성경 사도시대로 돌아가면 겐그레아의 위상과 역할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해안가에 자리한 겐그레아 항구로 수 많은 배들이 지중해와 에게해를 거쳐 온갖 다양한 생필품과 식량과 고린도로 가는 사 람들(주로 로마 시민들)을 태우고 이 항구로 들어왔습니다. 바닷가에는 그러므로 배와 승객들이 항해하는데 필요한 각 종 서비스업과 가게, 식당, 여관들이 즐비했을 것입니다.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사도행전 18:18)

바울이 고린도에서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와 더불어 천막제조업으로 자비량하며 1 년 6 개월 간 고린도교회를 개척한 뒤, 수리아로 배를 타고 떠나갈 때도 바로 고린도성에서 해안가로 내려와 (당시 로마 군사도로가 아주 잘 되어있었으니까 아마도 마차를 타고 겐그레아까지 내려왔을 겁니다) 겐그레아 해안에 있는 어느 이발관에서 그가 기도 중에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기 위하여 머리를 깎은 곳도 바로 이곳 겐그레아였습니다. 여담이지만, 미국 워싱턴주의 어느 이발관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서 이 성경본문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이발사들이 자기 이발관 이름을 “겐그레아 이발관” (Cenchrea Barber)으로 정했습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서에 이어 그 후속 편으로 사도행전을 기록한 의사 누가 (Dr. Luke)는 사도바울이 겐그레아를 떠날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그와 함께 고린도를 떠나 소아시아 에베소 지역(현재의 터키 서부 지역)으로 배를 타고 떠났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물론 다시 고린도를 재방문하게 되지만, 이들은 지난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에서 머물며 고린도교회 개척에 집중하였습니다. 고린도의 옛 성터 및 고린도교회 개척사역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자세하게 다루기로 하겠지만, 여기서 우리가 겐그레아교회가 어떻게 개척되고 어떤 역할을 하였을까 한번 상상하고 짐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지 않은 내용을 보편적인 세계 선교역사 속의 교회개척 과정과 단계를 기준으로 해서 이해하기 쉽도록 각색해 보려고 합니다. 성경을 이해하는데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겐그레아교회의 일꾼 뵈뵈 집사님 – 저는 겐그레아를 방문하던 날 새벽, 신고린도시의 현지인 집 숙소에서 일찍 잠이 깨어 사도행전 16, 17, 18 장을 한번 정독하면서 내가 현재 방문 중인 바로 이 땅에서 2 천년 전에 일어난 복음의 역사와 교회들의 개척 장면들을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지혜와 총명의 신 우리 주 성령님께서 나에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통찰력을 주십사고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날 아침 겐그레아 항구의 잔재되고 남은터에 이르렀을 때, 옛 로마시대의 돌벽돌 건물의 터전을 바라볼 때, 그 바닷가 완만한 언덕을 따라 형성되어 있었을 마을과 그 안에 분주히 움직이며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던 옛 겐그레아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그려졌습니다. 그리고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 뵈뵈 집사님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해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야트막한 언덕 위에 넓게 자리 잡은 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지역교회가 대부분 어떤 예배당을 따로 짓지 않고 성도의 가정에 모여서 예배와 말씀공부, 기도, 그리고 주님의 몸과 피를 나누는 성찬교제를 가졌는데, 겐그레아교회는 뵈뵈 집사님 집에서 주로 모였을 것입니다.

뵈뵈 집사님이 어떻게 바울을 만났는지도 자세한 기록이 없지만, 아마도 바울사도께서 아테네를 떠나 처음 고린도에 도착하던 바로 그날에 어쩌면 배에서 내리는 바울사도를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만나 자기 집 – 식당 (혹은 여관)으로 인도한 사람이 뵈뵈 집사님 아니었을까요. 주 성령님의 감동으로 사도 바울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뵈뵈 집사는 예수님을 영접하였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교회를 개척하는 동안, 그녀는 겐그레아와 고린도 간의 삼십리 길을 멀다하지 않고 기쁨으로 자주 왕래하며 말씀을 배우면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뵈뵈 집사에게 아름다운 신앙의 모범이 된 사람은 아굴라의 부인 브리스길라였을 것입니다. 아굴라-브리스길라 부부는 나중에 다시 로마로 돌아가 로마교회의 개척과 성장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유대인 성경전문가인 아볼로를 가르쳐 성령님을 체험하도록 만든 아주 훌륭하고 담대한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브리스길라는 뵈뵈 집사에게 어떻게 한 여인이 지역교회의 전도자가 되고 리더가 되는지, 또 섬기는 교회의 어머니가 되는지를 모범적인삶으로 보여주었고 뵈뵈 집사는 보고 듣고 배운 그대로 따라하여 브리스길라를
닮아갔을 것입니다.

뵈뵈 집사는 또한 자기가 사는 겐그레아에서도 복음을 전하여 겐그레아교회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경영하는 그 사업을 통해 겐그레아를 거쳐가는 수많은 로마시민권자들과 로마 군인과 고급 관리들에게 인정받으며 성공적인 기업가가 된 것은 물론, 후에는 여러 사도들이 아시아와 고린도를 왕래할 때마다 자기 집으로 영접하여 모든 휴식과 환대를 제공하는 영접자 (Welcomer)로 믿음이 성장하고 섬김의 지경이 넓어집니다. 겐그레아교회 역시 뵈뵈와 함께 점점 성장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6 장 1-2 절 말씀에서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뵈뵈 집사님을 소개한 내용을 보면,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2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찌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했는데, 이는 사도바울이 쓴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 곧 오늘 날 우리가 읽는 성경 로마서를 손에 들고 직접 로마로 배를 타고 가서
로마교회에 전달한 사람이 뵈뵈 집사님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마치 나를 영접하고 대접하듯” 뵈뵈 집사님을 영접하라고 한 데서 우리는 바울과 다른 사도들이 고린도를 오갈 때마다 이 겐그레아 마을의 뵈뵈 집사님의 영접과 환대를 받았으며, 또한 겐그레아교회 역시 뵈뵈 집사님의 집과 그 가족을 중심으로 개척되고 형성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뵈뵈 집사님이 사도바울의 중차대한 편지 전달 심부름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을 볼 때, 그녀가 한 사람의 여성이었지만, 겐그레아 항구를 떠나는 로마행 여객선을 타고 여러 날을 항해하여 로마까지 여행하기에 충분한 능력과 사회적 신분, 재력, 그리고 적극적인 성품과 복음에 대한 열정까지 갖추었던, 진실로 훌륭한 “일꾼” (a servant of the church of Cenchrea)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 다음 이야기는 우리가 그리스 도착 첫날 오후에 방문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중심지였던 나플리오 (Nafplio) 난민선교센터 사역에 관한 내용과 옛 고린도 성터 방문 소감을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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