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성경지리 탐방 (4) – 난민선교센터 방문과 고린도교회 옛 터 탐방 (바울의 4대 선교전략)

난민선교센터 방문과 고린도교회 옛 성터 탐방

우리는 첫날, 아테네 공항에서 곧 바로 운전하여 1 시간 남짓 거리인 고린도를 그냥 지나쳐서 다시 남쪽 나플리오 Nafplio 방향으로 한 시간 쯤 더내려가 그리스 아테네에서 20 년 이상 난민들을 대상으로 밥퍼사역을 통한 제자훈련 사역을 해 오신 양용태 선교사님 내외분이 약 1 년 전에 새로 시작하신 난민 사역 센터를 가장 먼저 방문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난 해 1 년 간 볼티모어 메릴랜드에 살면서 출석하던 풍성한교회 (윤병남 목사님) 단기선교팀이 마침 그 주간에 이 난민선교센터 농장에 와서 건축선교사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체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양용태 선교사님이시고, 맨오른쪽이 메릴랜드를 비롯한 미동부지역에서 자비량 건축선교로여러교회와 선교단체들을 돕고 계시는 이길혁 선교사님이십니다.이길혁 목사님내외분을 비롯한 풍성한교회 단기선교팀은지난해 11월에 이어 이번에 두 번째로 이곳에 와서 아직 덜 갖추어진 선교센터를 돕고 있었습니다. 아내 Joy선교사도 지난해 함께 이곳으로 단기선교를 왔던 터라, 저도 꼭 한 번 이 난민제자훈련선교센터를 방문하기를 원했습니다.

약 3 시간 동안 양선교사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우리가 지난 25 년간 동안 퍼스펙티브스 월드 크리스천 무브먼트 세미나를 연구하고 가르치며 110 여 개국 선교지를 보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양 선교사님의 사역 전반에 대한 컨설팅을 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기도회를 가진 후 선교팀을 모시고 마을 현지 식당으로 나와 킴미션 이름으로 저녁 식사를 대접해 드린 후에 고린도에 정해 둔 우리 숙소로 갔습니다.

전쟁 과 가난을 피해 오는 난민들 가운데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이곳 선교센터 농장에 연중 몇 차례 초청하여 캐러반 임시 숙소에 일정 기간 숙식하면서 양육하는 일과 이곳을 거쳐간, 전 유럽에 흩어져 있는 난민들을 인터넷 강의와 훈련을 통해 지속적으로 양육하고 연결해 주는 사역을 하는데, 오랜 경험과 유럽의 여러 국제 선교팀들과의 협력을 통한 난민 사역 네트웍에도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양 선교사님과 단기선교팀은 농장에서 무르익은 그리스 오렌지를 한 자루 담아 우리 차에 실어 주었으며, 이후 1 주일 동안 우리는 다른 과일을 전혀 구입할 필요 없이, 지금까지 맛본 오렌지들 가운데 최상품인 이 그리스 오렌지만 먹으며, 또한 우리를 호스트한 에어 비앤비 주인들에게도 나누어 주면서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 오렌지 나무

바울 사도가 1 년 6 개월 개척한 고린도교회 옛 터 탐방

사도 바울 일행이 아시아 (지금의 터키) 해안 도시 드로아에서 마케도니아 사람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손짓 하는 환상을 보고 성령님의 강권하심에 따라 그 당시 마케도니아 (유럽) 첫 성 빌립보로 가기 위해 빌립보 성의 항구도시인 네압볼리 (Neapolis)로 항해하여 건너갑니다. 그리고 나중에 자세하게 탐방내용을 정리하겠습니다만, 빌립보에서 루디아와 감옥 간수가족을 중심으로 빌립보교회를 개척한 후, 베뢰아와 암비볼리,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로 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들을 개척합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와 선교팀은 데살로니가에서 다시 배를 타고 아테네(아덴)로 내려와 그 유명한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앞 아레오바고 광장에서의 설교,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사도행전 17 장 22 절)로 시작하는 기독교변증론적인 길거리 전도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바와 같이 바울의 아테네 전도의 결과는 다른 지역들에 비해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으니 – “몇 사람이 (a few men)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한 사도행전 17:34 말씀과 같이 몇 사람 만이 아테네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아테네에서는 교회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런 다음 바울은 곧 바로 아테네를 떠나 배를 타고 고린도로 향합니다.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 (황제)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추방) 한 고로, 아굴라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게 이탈리아로부터 고린도로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직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사도행전 18:1-3). 신약 성경 고린도전, 후서를 읽어보면, 바울은 아테네에서의 실패 (혹은 저조한 결과)를 바탕으로 고린도 선교는 훨씬 진지하고 겸손하게 접근하는 것을 봅니다. 고린도전서 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님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하신대로, 진실로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나 논리, 논쟁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을 (고전 4:20, For the kingdom of God is not a matter of talk but of power!) 사도 바울은 아테네를 떠나면서 절실히 깨달았던 것입니다.

아테네에서의 좌절을 안고 고린도로 내려온 사도 바울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해 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방금 로마에서 유대인이란 이유로 추방당해 고린도로 이사 온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였습니다. 직업 기술까지 당시에 매우 인기있었던 가죽 천막을 만드는 기술로 동일 직종이었던 이들 부부와 바울은 1 년 반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고린도교회를 개척하고 고린도를 중심으로 하는 주변 아가야지방 일대를 순회하거나 각 지역으로부터 고린도로 찾아오는, 겐그레아교회 여집사 뵈뵈와 같은 평신도 지도자들을 집중 양육합니다.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는 1 년 6 개월 후에 바울과 함께 소아시아를 향해 떠나며, 나중에는 로마로 다시 돌아가서 로마교회의 일꾼이 됩니다 (로마서 16:3).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왜 고린도에서
1 년 6 개월이나 머물면서 전도하였는가, 그 선교전략적인 의미를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4 가지 주요 선교전략: 사도 바울의 첫 번째 선교 전략은 로마의 무역로를 따라 이동하며 주요 도시 중심의 전도와 교회 개척 – 바울은 작은 도시 혹은 외딴 지역을 찾아가는 대신, 주로 당시 전 세계를 연결하고 있던 로마제국의 무역로를 따라 위치한 주요 도시들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 그 주변 일대를 그 교회가 또한 전도하도록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디옥, 에베소, 고린도 등 아주 중요한 도시에서는 더 오래 머무르면서 그 도시와 주변 지역 평신도 지도자들을 초청, 집중 양성하여 복음이 퍼져 나가도록 했습니다. 두번 째 전략은, 주요 인물 중심 –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연결해 주시는대로, 주로 그 지역에서 영향력이 있는 주요인물들을 먼저 전도하여 양육, 지도자로 세우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그 지역교회 지도자들은 집사, 장로, 교사, 혹은 목사와 감독의 직분으로 사도들이 없는 동안 예배와 전도와 또 다른 제자들을 가르치고 세우며 주변 작은 도시들을 복음화하였습니다 (딤후 2:2). 사도 바울의 세번째 선교전략은 유대인 회당을중심으로 유대인들에게 우선 접근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여호와를 경외하는 유대인들,” 곧 예수님을 메시야로 기다리며 받아들일 준비가 된 유대인과 역시 회당에 출석하던 헬라인들을 먼저 찾아 전도하는 전략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주요 도시에서 유대인들의 사회적 지위가 상당하였고 유대인 회당이 도시 중심부에 대부분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고린도에서도 바울은 우선 안식일마다 고린도시 한 복판에 위치한 유대인 회당에서 자신의 랍비 (율법학자요 선생) 자격을 활용하여 말씀을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함으로써 복음 사역을 시작하였고 (행 18:4) 회당 옆 집에 살던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머물기도 하였으며 (행 18:7), 그리고 고린도 회당 장 (the Synagogue Ruler)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예수님을 믿으며 수 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게 됩니다 (행 18:8).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의 네 번째 선교전략은 재방문과 편지 왕래를 통한 지속적인 양육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 후에도 바울은 최소한 2 차례 이상 더 방문하였고(고후 12:14; 13:1), 3-4 차례 이상 편지를 써 보내었으며, 나중에 디모데, 디도, 그리고 아볼로를 대신 보내어 (고후 7:14; 8:17-24)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양육하였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사도 바울의 선교전략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또 다른 이유는 장차 이 고린도교회를 전초기지로 하여 그 당시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까지 복음과 함께 진출하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제 2 차 선교여행의 마지막 개척교회였던 고린도에서 위대한 서신 로마서를 기록합니다. 아마도 첫 개척 기간이 아닌, 두번째 혹은 세번째 방문하였을 때 로마서를 썼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로마서 서신은 겐그레아교회 뵈뵈 집사님이 로마까지 직접 들고 갔지요.

고린도 옛 성터

위 사진은 고린도 옛 성터 모습입니다. 고린도 역시 해안에서 떨어진 언덕 위에 세워졌으며, 도시 뒤에 멀리보이는 높은 산이 있고 그 산위에 견고한 산성이 수십리 밖 바다까지 내다 볼 수 있는 망대와 함께 건축되어 있어 유사시 적의 공격에 대비하거나 피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고린도성은 아테네 보다도 더 크고 풍부한 물산과 재화와 인물들이 사방에서 모여들고 흘러가는 (특히 로마로 전달되는) 육지-해양 십자로 (crossroads)에 위치하여 소아시아와 로마를 잇는 중간지점으로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이 고린도 교회를 통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는 구제사역과 로마선교의 전진기지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그리스 북부 지역, 곧 옛 마케도니아 지역 중심지였던 빌립보성과 빌리보 성의 항구도시 네압볼리에 관한 내용을 나눌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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