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ce 성경지리 탐방 후기 6 (최종편) – 2023. 6. 3

빌립보성 루디아 – 데살로니가 – 베뢰아

루디아가 사도 바울을 만난 장소를 찾아 빌립보 무너진 성벽 언덕 아래 강가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루디아 (전 가족) 세례/침례 기념교회”라는 교회당이 그리스 정교회에 의해 세워져 있는데, 빌립보성 바로 아래 시냇가가 아니라 약 2- 3 킬로 떨어진 강 상류지역에 위치해 있고, 그곳 교회당 앞을 흐르는 폭 5-6 미터의 시냇가 숲에 세례터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곳에 갔을 때가 아침 10시쯤이었는데, 마침 미국에서 교회 단체로 온 이들이 그 세례터에서 담임 목사님 집례로 침례식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오월 초순 흐린 날씨에 물이 제법 차가웠을텐데 침례를 받는 이들은 2 천년 전 루디아 Lydia 와 그 가족, 그리고 빌립보 감옥 간수장과 그 가족이 사도 바울과 실라에게서 세례를 받은 것을 기억하면서 기쁨으로 물속에 잠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6 장 13-15 말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성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소아시아의 도시)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예배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침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이 본문 속에서 우리는 몇 가지를 짐작 혹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바울 일행이 도착한 당시 빌립보 성에는 유대인 회당이 없었을 가능이 크다는 점입니다. 바울의 주요 선교전략을 앞서 소개했습니다만, 바울은 가는 곳 마다 우선 유대인 회당을 찾아가 안식일에 자신의 “가말리엘 문하 출신의 랍비” 신분을 활용하여 구약성경을 풀어 예수님께서 구약의 예언대로 바로 이 땅에 오신 메시야이심을 설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빌립보성에서는 안식일에 회당으로 가지 않고 성문 밖 강가로 나간 것을 볼 때 빌립보 성에는 유대인들이 그리 많지 않았고 회당도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행전 16 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사실 빌립보성에서 사도 바울과 실라를 핍박하여 채찍질하고 옥에 가둔 자들도 유대인들이 아닌 빌립보 성 사람들, 곧 로마 시민권자들과 로마인 관리들이었습니다 (행 16:21). 그리고 그 로마인 관리들은 나중에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라는 사실을 알고 두려워하며 바울에게 어서 그 성을 떠나기를 청합니다. 이는 대부분의 다른 도시에서는 그곳 유대인들이 회당을 중심으로 선교사 일행에게 집단적인 전도 방해와 박해를 가한 것에 (물론 유대인들이 로마인 관리들과 군대조직을 이용해서 핍박 함) 비교되는 매우 특이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빌립보 성에는 소수의 유대인들과 헬라인 혹은 로마인이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 곧 “아직 예수님은 알지 못하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들 God- fearers”인 여인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여인들이 강가에 빨래를 하고 있었다고 짐작하기도 하지만, 제 생각에는 이들이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로서 빌립보 성에 회당이 없으므로 성 밖 가까운 강가에서 안식일 마다 모임을 갖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회당이 없는 지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강가에서 모임을 가졌다는 사실에 관하여, 여러 학자들은 시편 137 편 1 절 말씀,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본문을 토대로, 전쟁포로, 기근, 혹은 질병과 재해로 인해 여러 이방지역으로 흩어졌던 디아스포라 (Diaspora) 유대인들은, 성전과 회당이 없는 그 현지에서 안식일 아침에 주로 강가로 나가 그곳에서 자연스런 모임을 갖고 시편을 찬송하면서 예배와 교제를 나누며 기도하였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빌립보 성에서 만난 루디아와 다른 여인들이라고 할 때, 제 짐작으로는 루디아가 당시 매우 고급스런 인기상품이었던 자주색 비단 무역 상인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루디아와 함께 강가에 모여있던 여인들은 아마 루디아의 자주색 무역에 관계가 있는 빌립보 지역 직원들이거나 혹은 거래관계에 있던 현지 여인들이었을 것입니다. 루디아는 원래 두아디라, 곧 당시 소아시아 (현재 터키) 사람이었지만 자주 비단 무역업을 위해 소아시아와 빌립보 사이를 왕래하면서 빌립보에 정착하여 집과 가족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매 주 안식일마다 성문 바로 아래에 흐르는 작은 강가로 나가 그곳 나무 그늘에서 (안식일에 금지 된 빨래나 어떤 다른 일을 하기보다는) 예배와 기도 모임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사도 바울 일행이 나타났고 자연스레 성경에 대한 대화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만남이었고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리디아를 비롯한 여인들은 예수님을 믿어 역사적인 빌립보교회가 개척됩니다.

여기서 (행 16:13) 사도행전을 기록한 기자인 의사 누가 Luke 는 “안식일에 우리 We 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라고 기록하는데, 성경 학자들은 이렇게 “우리가”로 표현된 사도행전의 본문들을 “우리-본문 We-section 혹은 We-passage” 이라고 부릅니다. 사도행전 저자인 누가가 “우리”라고 표현한 것은 곧 자기 자신이 그 현장과 그 사건에 함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사도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성에 갔을 때, 의사 누가도 그들과 동행하였으며, 사도행전 16 장 1 절과 17 장 15 절을 볼 때 그 일행에는 젊은 청년 디모데도 포함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성 안 시장장터 (아고라 광장)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리고 빌립보성에서 점치는 귀신에 들려 아주 용한 점쟁이로 소문난 여인이 그 점치는 귀신에게서 벗어나 예수님을 믿게 되자 그 여종의 로마인 주인들의 고소와 로마 관리들의 즉결처분으로 바울과 실라 두 사람이 재판 절차도 없이 매를 맞고 빌립보 감옥에 갇힐 당시에 의사 누가와 젊은 청년 디모데도 그들 가까이에 함께 있었으나 고난과 핍박에서는 제외되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탐방: 바울과 실라, 그리고 의사 누가와 청년 선교사 디모데, 이렇게 네 사람은 루디아의 집에서 얼마간 머물며 빌립보 교회를 세운 뒤 (행 16:40), 빌립보성을 떠나 데살로니가를 향해 길을 나섭니다. 물론 나중에 사도 바울은 이 때 세워진 빌립보교회를 그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고 의지하며 빌립보교회가 보내는 선교비와 여러 모양의 후원을 기쁨과 감사로 받습니다 (빌립보서 참조). 빌립보를 떠나 데살로니가로 가는 길은 약 150 킬로미터가 넘는 먼 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어느 한 곳에서 다른 도시로 옮길 때, 대부분 걸어서 이동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저는 당시 로마제국의 도로 시스템과 군사 및 공공 물자와

우편물 운송 시스템을 고려할 때 로마 시민이요 모든 상황에 익숙한 지식인 사도 바울이 무작정 걸어서 이동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특별히 어떤 지역에 들러 복음을 전하려는 목적이 있지 않는 한, 분명 당시 로마의 공공 운송 교통수단을 최대한 활용하여 이동했을 것으로 봅니다.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까 사이를 차로 직접 운전하면서, 2 천년 전 사도 바울 당시에 이미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정비가 되어있던 로마제국 무역로인 옛 이그나티안 도로 (Via Egnatia)가 지나간 길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대부분 드넓은 평야이거나 완만하고 비옥한 구릉지로 이어지는데, 사도행전 17 장 1 절에서 우리는 빌립보 성과 또 다른 큰 성 데살로니가 사이에 두 도시 (암비볼리 Amphipolis 와 아볼로니아 Apollonia)들이 언급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이 도시들은 지금도 데살로니가를 향하는 길 주변에 그 흔적이 남아있는 옛 로마 군사도시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두 도시를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데살로니가에) 유대인 회당이 있는지라” (행 17:1) 라고 기록한 것은, 사도바울 일행이 이 두 군사도시를 지나가는 당시 로마제국의 공공 교통편(돌로 포장된 무역로를 마차로 달리는)을 활용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당시 로마 군사/무역로는 매우 훌륭하고 견고하게 포장된 (약 6 미터 넓이의) 고속도로였을 뿐 아니라 일정 거리 마다 국가가 관리하는 역 Stations 들이 준비되어 있어서, 주로 로마 군인들과 퇴역군인 출신의 공무원들이 주둔하면서 여행객들에게 필요한 숙식과 말, 그리고 말 먹이를 (일반인들에게는 돈을 받고) 제공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에 도착한 우리는 처음으로 충분한 휴식을 위해 미국 호텔 홀리데이인 Holiday Inn 에 여장을 풀고, 데살로니가 옛 성터, 그리고 옛 성터에서 3-4 킬로 떨어진 데살로니가 항구를 걸어서 방문하였습니다. 다른 모든 그리스의 대도시들에 비해 데살로니가는 아름답고 한결 여유가 있는 도시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도심 거리의 가로수가 오렌지 나무여서, 지난 해 늦은 가을부터 익기 시작하여 이제는 농익어 떨어지기 시작한 오렌지 열매들과 더불어, 가지와 잎새 틈으로 새롭게 피어나는 꽃 향기가 도시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도착한 사도 바울은 “관례대로 (다른 도시에서 늘 하던대로)” 3 주 연속 그곳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님이 곧 그리스도 (메시야)라 하니” (행 17:2-3) 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고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데살로니가성에서 일어납니다. 이 큰 성 데살로니가는 당시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 다음으로 그리스와 로마 문명이 화려하고 풍성하게 꽃을 피운 곳인 만큼, 바울의 선교 대상은 유대인 뿐 아니라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랐다”고 했습니다 (행 17:4).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 날을 시작으로 바울 사도로부터 많은 칭찬과 사랑을 받는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님과 큰 확신으로” (데살로니가 전서 1:5, Our gospel came to you not simply with words, but also with power, with the Holy Spirit and with deep conviction!) 임한 교회가 됩니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1:2-4). 그런데 다시 그곳 데살로니가에 자리잡고 있던 유대인들이 적극적으로 복음에 방해를 가하고 사도들을 핍박하기 시작하였고, 그로 인해 형제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사도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Berea; Veroia; Veria)로 밤 중에 피신시키게 됩니다.

베뢰아는 내륙도시로서, 해안에 가까운 데살로니가에서 약 75-80 킬리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밤중에 급히 도피한 사도 바울과 실라가 베뢰아까지 도착하는데는 이틀 정도가 걸린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역시 로마 도로가 잘 닦여 있었지만 아마도 부분적으로는 안전을 위해 도보로 이동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베뢰아를 방문할 때, 자동도로안내 프로그램 (Google GPS)에 “베뢰아 유대인 회당”을 입력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언덕 위에 빽빽히 들어선 오래된 건물과 주택, 그리고 비좁디 좁은 베뢰아 옛 도심길을 겨우 겨우 통과하여, 회당 가까이 가서도 여러 차례 묻고 또 물어 겨우 베뢰아에서 유일한 유대인 회당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베뢰아의 역사적인 유대인 회당을 맡아 자원봉사로 관리하며 찾아오는 이들을 안내하고 있다는 Abbie 라는 여인 (사진) 은 자신을 유대인이 아닌 그리스 현지인이라고 소개를 하며, 성경 속에 등장하는 이 역사적인 유대인 회당을 관리하며 매일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만나는 즐거움 때문에 무료 봉사를 계속한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베리아 (Veria,현재 이 도시의 이름) 에 다른 유대인 회당은 없으며, 도심 한 가운데에 위치한 이 회당이 2 천년 전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들의 핍박과 위협을 피해 찾아와 머물며 복음을 전한 바로 그 장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회당 성립 조건이 최소한 유대인 성인 남성 10 명이 모여야 회당을 열고 모임을 가질 수 있는데, 현재 베뢰아에는 그만한 수의 유대인이 없기 때문에 회당은 비어있고 그저 방문객들에게 1 인당 3 유로씩 입장료를 받는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회당의 행정적인 관리는 데살로니가 유대인 회당이 간접적으로 관리운영한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베뢰아 회당으로 피신한 사도 바울과 실라는 짧은 베뢰아 전도를 통해 놀라운 열매를 얻고 큰 위로와 격려를 받게 됩니다 –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들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75 킬로를 달려와)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형제들이 곧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내 보내어 (아테네로 갈 수 있도록 항구가 있는)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베뢰아에) 머물더라.” (행 17:11-15)

다시 유대인들의 위협을 받은 바울은 예수님을 영접한 베뢰아의 새신자들을 향한 애틋한 사랑과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혼자서 배를 타고 아테네로 가기 위해 가까운 항구로 내려갑니다.

여기까지 그리스 성경지리 탐방 후기 1-6 편을 마무리합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는대로, 그리고 가능하면 꼭 우리 킴미션 동역자님들과 함께 남은 성경지리 현장 탐방을 하려고 합니다. 우선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9 박 10 일

정도의 기간으로 해서 소그룹 규모의 팀을 꾸려 다녀올 계획이며, 차후에는 튀르키예 (터키) 도 소아시아 일곱 교회 지역을 탐방하는 1 주일 정도의 소그룹 팀을 꾸릴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킴미션 동역자님들 가운데 이 성경지리 탐방을 원하시는 분들이 있으시면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킴미션 동역자님들로 구성될 성지순례 팀은 우리가 그동안 배워 온 퍼스펙티브스 월드 크리스천 무브먼트의 여러 관점들을 바탕으로 성경지리와 성경 본문을 대조, 적용함과 동시에 성지 탐방 중에 현지에서 사역하시는 우리 선교사님들과도 만나 그분들의 선교사역을 배우며 동참하는 기회를 포함하게 됩니다.

그럼 다시 한번 여러분의 사랑과 기도와 동역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평강과 승리를 빕니다. 할렐루야!

감사와 기도로,
바나바스 김경환 목사 드립니다
Korean International Ministries
www.KIMMiss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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