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성경지리 탐방)는 영적전투입니다.
이번 저희들의 터키 성경지리 탐험은 하나님의 은혜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잘 마쳤습니다. 성삼위 주 하나님과 모든 복음의 동역자님의 기도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순조로운 여정 가운데서도 늘 우리의 영과 마음이 느끼는 가장 큰 부담과 슬픔은, 그 광대하고 풍요롭고 아름다운 나라 터키 (Turkey란 국가 이름을 한국에서는 공식적으로 “튀르키에”라고 부르고, 미국 정부는 튀르키에가 아닌 원래 이름 “터키”로 이전처럼 부르기로 공식 결정하였음)를 1주일 이상 구석구석 여행하였지만, 가는 곳 마다 이슬람 모스크가 마을 한 가운데 우뚝우뚝 솟아있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니, 딱 한 곳에, 딱 하나의 오래된 예배당이 있기는 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여행 중 비시디아 안디옥을 지나서 도착한 도시 이고니온 (오늘 날 도시이름 코냐 Konya) 도심 한 가운데 “바울 기념교회” 라는 교회당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일부러 이 오래된 예배당을 찾아갔지만, 매우 비좁고 복잡한 구도심 거리에, 그것도 마당조차 없는 예배당은 수년째 잠겨있고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듯 먼지로 덮여있었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와 터키 정부가 합의하여 겨우 남겨놓은 건물인데, 그래도 낡은 교회당 건물 전면에 십자가 표시가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터키 전역에는 터키 정부과 아르메니아 정교, 그리스 정교, 그리고 시리아 정교회와 정략적으로 합의하에 허용한 이와같은 역사적인 예배당 건물이 단지 몇개 만 공식적으로 유지될 뿐이고 터키 공화국 정부가 수립된 1923년 이래 지금까지 102년 동안 정부의 인가를 받아 새로 건축된 기독교 교회당은 오직 하나, 곧 2023년 말에 완공된 시리아 정교회 새 예배당 입니다 (St. Ephrem Church, Istanbul, 터키 대통령 에르도간의 특별 배려로 건축).
터키는 세속주의 이슬람국가라고 하여 다른 근본주의 이슬람국가들 보다는 비교적 다른 종교에 관대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여행하면서 느끼기에는, 현 대통령이 권력을 견고하게 한 이후 지난 십 수년 동안 매우 심각할 정도로 이슬람 근본주의로 변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스탄불에 가면 꼭 방문하려고 하는 소피아 성당 (Hagia Sophia) 도 더 이상 역사적인 성당이 아닙니다. 그 모습부터가 13년 전 우리가 처음 방문했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이슬람 모스크로 변형을 시켜놓았고 (지금도 개조 공사가 진행 중) 비록 공식적으로는 소피아 박물관이란 이름도 함께 사용하고 일반 관광객들에게 비싼 입장료를 받고 무척 제한된 내부를 구경하도록 하지만, 사실은 이 소피아 모스크를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알라신에게 기도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이슬람 신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지난 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구태여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서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계획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는 눈에 보이는 교회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리스도인도 없습니다.
저의 두번째 슬픔은, 역시 예상은 했지만 이 광대한 나라에 1주일 이상 하루 수백 킬로미터씩 운전을 하고 다니며 여러 지역과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도, 그곳에 그리스도인들이나 선교사, 혹은 기독교적인 어떤 문화, 그림, 찬양, 길거리 찬양사역자 혹은 전도자는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 여행 출발 전에 우리는, 짧은 기간이고 또 여행 비수기이긴 하지만 할 수 있으면 이 기간 중에 현지에서 사역하는 숨은 현지 사역자나 선교사, 그리고 현지인 그리스도인을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27년 전인 1998년, 국제오엠선교회 둘로스 선교선의 전도담당자 (Evangelism Coordinator)로 사역하면서 이번과 같은 기도제목을 갖고 당시 방문한 100 % 무슬림 국가라 자랑하는 몰디브 (Maldives) 에 들어가 하루 낮 동안 여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우리 전도팀이 “여리고 작전 Jericho Project”라는 영적전투 작전을 세우고 350여명 모든 둘로스 선교사들이 몰디브의 수도 말레 Malé전체를 두 바퀴 돌고 (한 나라의 수도이지만 둘레 6킬로미터의 작은 섬) 거리를 분담하여 오전 오후 각각 다른 거리를 들어가 걸으면서 그 나라와 민족을 위한 “걷기기도” (Prayer Walk 기도산책)를 했는데, 저는 함께 간 남아공화국 출신 동료 선교사와 더불어 우리가 맡은 거리에 위치한 중학교 정문에서 한 스리랑카인 영어교사를 만나 대화하다가 그녀가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동시에 그 자매로부터 매주 금요일 스리랑카 대사관 지하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당시 몰디브 정부에 의해 구속수감된 35명의 현지인 그리스도인들에 관한 자세한 소식까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배로 돌아와 선상 기도회 시간에 이것을 간증하고 함께 그 박해받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로부터 1주일 쯤 후, 우리가 미얀마를 향해 항해 중에 그 모든 성도들이 모두 풀러났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이번 터키 성경지리 탐험 및 중보 기도 산책/중보기도 운전 (Prayer Walk & Prayer Drive) 중에는 그와같은 기적적인 응답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마음은 더 간절한 기도로 가득차고 쏟아졌습니다. 그만큼 시대가 더욱 엄중해졌다는 의미요, 영적으로 악한 자의 더 견고한 진 (Stronghold) 이 된 이 땅에는 숨막히는 긴장감이 보이지 않게 팽배해 있음을 느끼면서, 우리는 그저 잠시 며칠 다녀가는 이들이지만, 이 땅에서 매일 5 차례 귀가 아플정도로 시끄러운 이슬람 아잔 기도 방송 소리를 억지로 들어야만 하고, 매일 매순간 영적 긴장 속에 살아야 하는 모든 비공개된 선교사님들과 그리고 역시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현지인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을 생각할 때 아픈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와 같은 탄식하는 마음과 기도를 쏟아부어 주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이 나라 터키 뿐 만 아니라, 이보다 더 엄중하고 무너지지않을 것 같이 견고한 진, 그리고 여러 복음에 적대적이고 복음의 접근이 제한 된 나라들 (the Creative Access Countries; the Countries Closed to the Gospel; 10/40 Window Regions)을 위해 쉬지않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도 소망을 품고 주님을 바라봅니다.
대부분 터키 현지인들, 곧 우리가 주로 방문하는 성경 역사와 본문의 배경이 되는 바로 그 도시, 그 장소 주변에서 살아가는 주민들 거의 전부는 우리 외국인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왜 그 외딴 곳까지 힘들게 찾아오는지 그 이유를 알지도 못하고 관심조차도 없다는 것을 이번에 확인하였습니다. 대부분 성지 순례자들은 일단 단체관광을 통해 버스를 타고 현장에 도착한 후 잠깐의 시간 동안 둘러보고 또 다시 다른 장소를 향해 출발하기 때문에 현지인들과의 만남이나 대화를 할 기회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직접 차를 운전하며 단체 관광버스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까지 깊숙히 들어가며, 또 중간중간 작은 시골 마을에 멈춰서서 마을 시장이나 구멍가게에서 빵과 과일이나 터키 요거트를 구입하기도 하고 또 매일 저녁 머무는 숙소도 작고 저렴한 현지 여관들이다 보니 현지인들과 만나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터키인들 대부분 (특히 시골지역)이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한국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만은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엄청난 효과가 있었습니다. 터키인들은 거의 모두가 한국사람을 좋아하고 또 적극 그 호감을 표현합니다. 저 자신의 여행 중
만남의 전략도, “자신감 넘치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친근히 여기는 밝은 미소와, 한 옥타브 높은 바리톤 음성으로 접근하여” (긍정적이고 친근한 첫 인상의 중요성) 1분 안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를 10년된 지기 (친구)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의 이와 같은 접근법이 놀랍게도 터키 사람들에게는 거의 100퍼센트 적중하였습니다. 게다가 저 혼자가 아니고, 다소곳해 보이면서 역시 밝게 웃으며 신중하게 다가가는 동역자가 곁에 있으니 남여노소 막론하고, 그 어떤 서먹함이나 경계하는 눈치 없이 우리를 영접해 주고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현지인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그래도 터키인들의 소박하고 순수한 인성을 향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복음 역사의 가능성이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다녀 본 백 수십개국의 나라들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마치 우리 나라 대한민국의 60-70년대에나 볼 수 있는 순수한 인심이었습니다. 그 한 두가지 예를 소개해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환영자들
2025년 4월 25일 (금) 우리가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그리고 히에라볼리 옛 교회들 한 가운데 위치한 내륙 온천도시 파묵칼레에서 하루 밤을 묵고 이른 아침 6시에 출발, 터키 남부 서해안에 위치한 밀레도까지 3시간 가까이 운전하여 가서 밀레도를 둘러본 후 다시 한 시간 위쪽 방향으로 떨어진 에베소교회 옛 터를 지나, 역시 초대교회 가운데 하나인 서머나교회가 있던 도시 이즈미르 (Izmir) 에 도착했을 때는 낮 1시쯤이었습니다. 새벽부터 서둘러 나서서 아침식사도 못하고 차 안에서 빵과 과일과 요거트 등으로 주린 배를 채워가며 시골지역만 지나느라 몹씨 피곤하고 주린 상태였는데 감사하게도 옛 서머나의 중심시장인 아고라 Agora가 있던 곳이 현재 터키 제3의 도시인 이즈미르 도심 한 복판이었고, 바로 큰 길 건너편에 엄청나게 크고 오래된 전통시장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저 뭔가 있을까 해서 들어갔는데, 서울 남대문시장 정도의 큰 규모에 시장구조가 복잡한 미로형이고 사람들이 엄청 붐볐습니다. 마침 한 식당에서 소머리국밥 같은 스프를 사람들이 먹고있어서 들어가 앉았는데, 아 글쎄 중년의 식당 주인과 종업원들 (이슬람국가인지라 대부분 시장 업무 종사자들이 남자임)이 우리를, 특히 Joy 선교사를 너무나 친절하게 맞이하고 접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음식이 어찌나 구수하고 맛있는지, 부드러운 식빵과 함께 아주 배부르게 잘 먹고 새로운 힘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비용은 두 사람에 1만원 정도). 식당 주인은 따뜻한 차 (터키 말로 “차이”)까지 대접하였습니다.
더 놀라운 환대를 경험한 것은 그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그날 (금) 오후 서머나를 나서서 사데와 빌라델비아 옛 터까지 내달렸는데, 필라델피아는 엄청나게 비옥한 포도의 집산지였고, 우리가 하루 밤을 머문 사데지역부터는 올리브의 집산지가 시작되었습니다. (여행 첫부분 이틀 간 내달렸던 갑바도기아 지역과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등 내륙 고원지대는 완만한 구릉지대 윗부분까지 밀농사가 가능한 곡창지대였음. 터키는 지진이란 천재지변을 제외하면 참으로 비옥하고 광활한 축복 받은 땅이라고 할 수 있음.) 그 다음 날인 토요일 (26일)도 아침 6시이전에 출발하느라 숙소에서 아침 7시부터 무료로 제공한다는 식사를 포기한터라, 우리는 사르데를 떠나 첫번째 도시인 두아디라 교회 옛 터가 있는 중소도시 아키샤르 (Akhisar) 시내에 들어가자 마자 도시 뒷골목에 차를 적당히 주차하고 사람들(모두 남자들만) 이 여럿 모여있는 식당을 찾아들어갔습니다. 아직 아침 7시가 되지 않은 시간인데, 동네의 나이든 남자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는 곳이면 바로 우리가 가장 믿고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곳이니까요. 그런데 이 작은 식당의 비교적 젊은 남자 사장 겸 주방장은, 우리가 주문한 것들 외에도 이것저것을 더 가져다 주면서 아침식탁을 풍성하게 차려주었고, 이웃집에가서 차이까지 주문해다가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식당 종업원 4명과 손님들 대여섯 명이 우리를 신기한듯 관심있게 지켜보며 손짓, 몸짓과 표정으로 호감을 표시하였습니다. 큰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스프와 소고기 비게덩이를 추가주문하여 매운 고추와 이름모를 야채까지 곁들여 아주 맛있게 먹고 나서 계산을 하려는데, 그 주인 주방장이 자신의 휴대폰의 통역기능을 이용하여 말하기를, 오늘 우리 두 사람을 만난 것이 너무나도 기뻐서, 아침 식사를 자신이 대접하는 것이니 아무런 비용도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그것도 자신의 식당에서 이것 저것 음식을 시켜먹고 이제 금방 다시 떠나갈 이름모르는 손님에게 식사대금을 전해 받지 않겠다고 하다니! 아내가 구태여 터키 리라를 꺼내어 보이며 지불하겠다고 주장하자, 그 사장님은 그 가운데 100 리라 (약4천원) 만 인사치레로 받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표정과 마음씨가 너무나도 마치 한국의 어느 시골 인심좋은 이웃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200리라를 식당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테이블 정리를 하고 심부름을 하는 소년의 손에 쥐어주었더니 그 청년 역시 받지않겠다고 몇 차례나 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마음에 아름답게 새겨진 두아디라 시장통의 그 따뜻한 터키 사람들, 오 주님, 기억하여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