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Novosibirsk에서 김경환 선교사가 드립니다

사랑하는 선교의 동역자님께,

존귀하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러시아 시베리아 노보시비리스크로부터 문안을 드립니다.
저는 예정대로 지난 토요일 이곳에 도착하여,  주일 오전 조금 전, 주일예배를 마쳤습니다.  오늘 오전 10시 예배는 이번 제41기 미션 퍼스펙티브스 세미나가 열리게 될 이곳 노보시비리스크 장로교회당에서 러시아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렸으며 제가 설교말씀을 전했습니다.  이 교회는 20여 년 전 저의 신학대학원 동기생인 우동수 선교사님이 개척한 현지인 교회로,  현재는 우동수 목사님의 이곳 사역의 첫 제자 가운데 한 명인 젊은 제니스 (Denis) 목사님(고려인 4세) 부부가 담임 목사로 섬기고 있으며 고려인(까레야스키)들과 러시아 인들이 다양한 연령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교회입니다.  오늘 주일 오전예배에서 저는 <구원의 의미와 목적>(요3:16-17) 이란 제목으로 설교하였으며 우동수 목사님이 러시아어로 통역하셨습니다.  통상 러시아에서의 주일예배는 약2시간이 소요되는데, 오늘은 매월 첫째 주에 있는 성찬예식까지 이어졌고 아주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예배 후에는 교회당 지하 친교실에서 러시아식 점심식사 (빵과 닭고기 스프 그리고 러시아 차)로 애찬을 나누면서 성도님들과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서너명의 고려인 성도님들이 서툰 한국말로 저에게 자신들의 부모님들 이야기와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 그리고 그 자녀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온 초기 한인 디아스포라들과 어쩌면 비슷한 시기에 조국을 떠났지만 전혀 그 방향이 달랐던 탓에, 러시아 땅으로 흩어진 한인 디아스포라들은 실로 눈물과 고난의 세월을 보내었고, 지금까지도 그 후손들은 영육간에 가난하고 고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글 나중에  이어지는 첨부 설명 자료 참조해 주세요).

오늘 주일 오후 4시에는 다시 같은 교회당에서 모이는 한국어 예배 회중 (노로드 교회)주일 예배에 설교로 섬겼습니다. 이곳에는 한인교회가 없는 대신 한국어로 예배드리는 교회, 곧 그 구성원이 한국에서 온 유학생, 카레야스키 러시아인들, 그리고  슬라브 및 다양한 소수종족 러시아인들이 함께 모여 한국어로 예배드리는 교회가 있습니다.  담임은 한국에서 파송받아 이 지역의 유일한 한국학교 교장으로도 사역하는 안영일 선교사님이십니다.  안영일 목사님은 이곳에 파송되어 온지 12년 되셨는데 30여명의 한국인 선교사들 가운데 가장 젊은(40대 초반) 목사님입니다.  그만큼 러시아 특히 시베리아는 한국교회와 한국인 선교사후보생들에게도 별로 인기가 없고 관심에서 멀어진 선교지라는 뜻이지요.

오후 4시 예배는 물론 통역없이 한국어로 직접 설교를 하였습니다.  오늘 모인 이들은 주로 젊은 유학생들과 젊은 부부집사님들이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이사야 54:1-3)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직은 개척의 대상지이고 불모지 같은 이곳이지만 하나님이 문을 여시면 이곳이 진실로 사람 사는 곳,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오는 곳이 되고 영육간에 준비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놀라운 결실과 추수의 풍성한 축복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곳 시베리아에도 한국에 관한 관심과 한류열풍이 일어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안영일 선교사님은 한국학교에서 20-30명의 러시아 젊은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면서 전략적인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사역하는 한국인 선교사님들은 대부분 소수의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제자훈련을 통한 장기적인 사역을 하고 있는에 여러 모로 어렵고 힘든 여건 속에서 수고가 많은 것을 봅니다.  그런만큼 이번 우리 킴 미션의 미션 퍼스펙티브스 세미나가 모든 선교사님들과 사모님들, 그리고 그분들을 직간접적으로 돕고 있는 소수의 한인 성도들에게 요긴하면서도 큰 위로와 도전이 될 것입니다.

저와 함께 이번 세미나를 섬기게 되실 킴 미션 이사장 임이근 장로님(순복음 라스팔마스교회 장로, 원양어업 주식회사 풍림수산 대표)께서는 오늘 밤 11시에 한국-블라디보스톡을 거쳐 이곳에 도착하십니다.  세미나는 내일 (월) 저녁부터 시작하여 화, 수 이틀간은 오전-오후-저녁시간까지, 그리고 목요일과 금요일은 선교사님들의 사역지 방문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해 동역자 여러분께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곳 시베리아의 날씨는 지난 이틀간 비가 내렸고 오늘 주일은 화창하게 개였습니다.  기온은 아침 2도, 낮 10도 정도인데 아주 아름다운 가을 단풍이 무르익어 불과 한 두주 후가 되면 닥쳐올 엄청난 겨울을 전혀 예상할 수 없게 만드는 좋은 날씨입니다.

이곳에 사는 카레야스키들은 주로 저 극동 사할린으로 처음 이주 혹은 강제징용 당하였던 옛 일제치하 조선 유민들의 후손들이며 사할린에서 살다가 스탈린 치하 소수민족 이주정책에 의해 강제로 러시아 대륙을 횡단하여 이곳 시베리아로 이주 해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교회 성도들 가운데는 우동수 선교사님이 1990년대 초 최초의 한국인 선교사 목사로 사할린에 파송되어 사역하던 사할린 카레야스키 교회 성도들과 그 자녀들 가운데 이곳 시베리아까지 (여러 형편에 의해) 따라온 분들도 계십니다.  40대 후반의 한 여자 집사님은  모친이 사할린에서 우동수 목사님과 함께 한인(까레야스키) 교회를 섬기던 분인데, 그 모친은 사할린에서도 기차로 4-5시간 떨어진 곳에 살면서 매주일 마다 예배에 신실하게 참석하였다고 합니다.  그 모친은 현재 한국 정부의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 정책에 의해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여 한국에 살고 계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러시아에서 수 십년간 거주해온 까레야스키 동포들에게 자신이 원할 경우 대한민국으로의 영주 귀국을 주택 및 생계비 보조 등의 혜택과 함께 도와주고 있으며 1945년 이전에 출생한 사람들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군요.

일제 치하에서 가난과 굶주림, 그리고 신앙적인 박해를 피해 조선 땅 고향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사할린으로 떠났던 수많은  옛 성도들, 그분들은 사할린에서 피땀 흘려 땅을 일구고 조선인 거주지 곧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여 믿음을 지켜오다가 1937년 스탈린에 의한 연해주 및 중앙아시아로의 강제 이주, 그리고  1940년대 후르시쵸프 서기장 치하에서 모든 교회당이 폐쇄 파괴되는 핍박을 받으며 지하교회로 믿음을 어렵게 유지하기 시작하였고,  1990년대 초 소련이 무너지고 난 뒤에는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다시 세우고 대한민국으로부터 파송되어간 우동수 선교사 등의 도움으로 신앙과 교회 공동체를 회복하게 됩니다.  좀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첨부해 드리는 자료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제41기 미션 퍼스펙티브스 시베리아 세미나 시간사용 계획
이번 세미나는 밤낮 종일 강의가 이틀 계획되어, 다른 어떤 세미나보다도 더 시간적으로 여유있게 진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김경환 선교사 혼자서대부분 강의를 해야 하는만큼 체력과 건강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가 특별히 함께 해주셔야 합니다.

  • 2012. 10. 8일 (월)
    저녁 7시~ 9시: 제1과 <살아계신 하나님은 선교의 하나님시다!>  제2과 <선교, 하나님의 영광!>
  • 9일 (화)
    오전 10시~12시: 제3과 하나님 나라가 임하옵시며 (영적 전쟁), 제4과 열방을 위한 명령 (이방인 선교)
    오후 2시~5시: 제5과 복음을 자유롭게 함, 제6과 세계 기독교 운동의 확장 역사, 제7과 선교역사의 여러 시대들.
    저녁 7시~9시: 제8과 세계 기독교 운동의 개척자들, 제15과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들 (World Christian Movement)
  • 10일 (수)
    오전 10시~12시30: 제9과 남은 과업 미전도 종족 (선교통계), 10과 그들은 어떻게 들을 것인가? 제11과 하나님의 사랑의 다리가 되어.
    오후 2시~5시: 제12과 기독교적 지역사회 개발, 제13과 교회의 자발적 배가, 제14과 최전방 교회 개척사역
    저녁 7시~10시:특강, 한국교회 선교 역사 + 선교영화<Peach Child화해의 아이> 상영에 이은 토의와 나눔의 시간
  • 11일 (목)-12일(금):
    선교사님들의 사역지 방문

 

[참고 자료: 사할린 한인 관련 인터넷 자료]

목차  1. 사할린 한인 영주귀국 시범사업  2. 사할린 한인 영주귀국 확대사업

사할린(Sakhalin)에 거주하는 한인(韓人)들은 대부분 일제 말기에 징용노동자로 강제연행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終戰)된 당시 약 4만 3000명의 한인이 사할린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할린 한인들은 일본 측의 일방적인 국적 박탈 조치로 인해 귀환하지 못하였으며, 구(舊)소련 측도 노동력 확보를 위해 억류 조치를 하였다. 2011년 3월 현재, 사할린에는 약 3만여 명의 한국계 동포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중에 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자인 한인 1세는 약 1,50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2011년 3월 현재까지 영주귀국 시범사업•확대사업 등으로 3,906명이 한국으로 영주귀국하였다.

1. 사할린 한인 영주귀국 시범사업

사할린(Sakhalin) 한인 영주귀국 시범사업은 1994년 3월 및 1994년 7월, 두 차례의 한•일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정부와 협의를 거쳐 조속한 해결방안을 마련키로 합의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한•일 실무회담을 통해 영주귀국자를 위한 ‘100명 수용 요양원 및 500세대 입주 아파트’의 건립에 합의하였다. 이에 일본 측은 건설경비 32억 3000만 엔을 지원하고 아파트는 30년간 임대 형식으로 공급하고 한국 측은 요양원 및 아파트 건립부지를 제공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1997년 12월부터 1998년 9월까지 ‘조기귀국사업’으로 임대아파트 82세대가 입주하였고, 1999년 2월에는 인천요양원에 100개 병상을 갖춘 ‘사할린한인복지회관’이 완공되었다. 1999년 12월에는 ‘안산 고향마을 아파트’가 완공되어, 2000년 7월에 입주가 완료되었다. 이어서 2005년 9월에는 일본 정부와 안산시가 공동 부담으로 안산요양원(100개 병상)을 개원하였다.

한편, 사할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일본 정부는 1998년 11월 28일 가고시마(鹿兒島)에서 열린 각료간담회를 계기로 한•일 외교장관회담 시 ‘사할린 내 한인문화센터’ 건립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2002년 9월, 사할린 한인지원 공동사업체 19차 운영위원회에서 로지나(Rosina) 문화회관 주변 부지를 건립 부지로 최종 확정하고 2004년 여름에 착공하여 2006년 11월에 개관하였다.
2. 사할린 한인 영주귀국 확대사업

사할린(Sakhalin) 한인 영주귀국 시범사업이 종료된 후에도 현지에 잔류 중인 사할린 한인 1세들의 영주귀국을 확대해 달라는 요청이 계속 제기되어 이를 수용하기 위한 영주귀국 확대사업을 실시하였다. 이를 위해 한•일 양국 간 예산확보 조치 등을 거쳐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영주귀국 희망자를 대상으로 영주귀국사업을 추진하였다.
당초 영주귀국 확대사업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실시한 후에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와 협의를 통해 2010년 이후에도 한•일 공동으로 영주귀국 확대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2007년부터 2010년까지 2,222명에 대한 영주귀국 사업이 실시되었다. 일본 측은 2010년 8월 10일 간 나오토(菅 直人) 총리 담화를 발표하여, 사할린 한인 지원사업을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영주귀국 확대사업에서는 주거시설로 국민임대 아파트를 제공하고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의거 수급권자로 지정되면 생계비 지급하고 별도로 특별생계비를 지원한다. 또한, ‘의료급여법’에 의해 근로무능력 가구(1종)는 의료비 전액을 무료로 지원하고, 근로능력 가구(2종)는 일정 부분을 본인이 부담하도록 한다. 그리고 장애가 있을 때는 ‘장애인 복지법’에 의한 수당을 지급하고, 사망 시에는 장제비를 지급하고 천안에 있는 국립 ‘망향의 동산’에 납골 방식으로 무료 안장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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