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자였던 사도 바울 선생님은 2000년 전의 선교사였지만, 당시 그의 활동 무대였던 로마 제국이 오늘 날 지중해 주변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영역을 지배하고 있었기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자유자재로 (물론 로마로 가는 첫 여정은 멀고도 험난했지만) 왕래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사역에는 주요 전략이 있었는데, 1. 주요 로마 군사 무역로 (그리고 주요 항로를 오가는 정기선박) 를 활용한 이동 2. 로마 군사 무역로 선상에 위치한 로마 제국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한 복음 전파, 제자 양성, 그리고 교회 설립 (그 주요도시들로부터 각 주변 지역 소도시를 향해 교회들이 자발적으로 배가할 수 있도록 유도) 3. 지역마다 주요 인물 (일꾼)들을 양성 4. 재 방문과 서신왕래를 통한 지속적인 양육 등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사도 바울 선생님의 로마 여정에 등장하는 로마 제국의 군사 무역로 아피아 가도 (Via Appia Antica; Ancient Appian Way)를 간단히 소개합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All roads lead to Rome.)” 라는 서양 속담도 있습니다만 로마에서 가장 오래되고 역사적인 길이 있다면 역시 고대 압비아 가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 절약을 위해 위키백과 한국어 번역에서 아래 내용을 인용합니다 (사진2장 인용 포함).

아피아 가도라는 이름은 로마의 감찰관인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가 삼니움 Samnium전쟁 중이었던 주전BC 312년에 처음으로 군사 도로로 사용한 뒤에 붙여졌다. 아피우스가 도로 건설을 입안하고 직접 총감독을 맡았다. 로마 수도(Roman Aqueduct水道, 물길 혹은 수로) 중 최초의 수도(아피아 수도 Aqua Appia) 역시 같은 시기인 기원전 312년에 건설이 시작되었다.
도로 건설의 필요성: 로마 군대는 군대를 재정비하고 다시 전투를 준비할 수 있는 여러 군사기지에 의존했다. 이 기지는 전장에서 바로 공격할 기회를 기다릴 수 있도록 많은 수의 로마 병사를 수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지들은 수도인 로마에서부터 연결되어 출입이 쉽고 물자 공급이 수월한 좋은 군사도로를 필요로 했다. 이 때문에 4세기 중반, 아피아 가도는 군사적 물자 교류를 위한 중요 수송로로 건설되어 군사 및 무역로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로마의 군사 무역로 (가도)에는 다른 길들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직선적: 군대의 수송을 목적으로 한 도로이므로 가능한 한 평탄한 직선으로 건설되었다. 예를 들어 길을 평탄하게 유지하기 위해 지반이 약한 습지대에서는 말뚝을 많이 박아 토대를 쌓고 그 위에 도로를 건설했다. 또한 강이나 계곡에서는 길과 같은 높이로 다리를 만들어 도로가 지나가도록 했다. 오늘 날의 고속도로와 같은 원리이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 군대의 신속한 이동을 위해서 일반인과 수송병력이 도로에서 뒤섞이지 않도록 너비 1~3미터 정도의 인도를 차도의 양 옆에 따로 만들었다 (사진).
도로 포장 : 중요한 로마 가도의 대부분을 전부 포석으로 포장했다. 놀랍게도 그 도로 포장 구조는 현대의 도로와 거의 비슷하다. 포장 전체 두께는 1.0 ~ 1.5 미터 정도이며, 최상층에는 접합면이 맞물리도록 자른 한 변 70 센터미터 정도의 큰 돌을 빈틈없이 짜맞추어 깔았다. 그 당시 마차는 둘레 1.2 미터 정도되는 큰 바퀴를 사용했고 바퀴둘레를 철판으로 둘렀기 때문에 마차 바퀴가 지나다니는 도로 양편 바닥이 움푹 패이기도 했다.
용이한 배수: 군사 및 무역로의 유지, 보수가 용이하도록 빗물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다. 도로 중앙부는 높이고 가장자리는 낮게 아치형으로 만들어 (현대의 도로 횡단 기울기 구조와 유사) 비가 오면 빗물이 가장자리로 흘러 내리도록 만들었다. 도로 가장자리에는 움푹 패인 배수구를 만들기도 하였다. 또한 침입한 물이 고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로 포장의 최하층에는 자갈을 깔았다.
가로수에 대한 대책: 지하로 뻗는 가로수의 뿌리는 가도의 차도 부분에 자칫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도로 포석 포장의 바로 바깥쪽에 나무를 심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현재 이탈리아 주요 도로에는 멋지고 비슷한 모양으로 다듬어 진 웅장한 소나무 가로수들이 잘 가꾸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나무들은 당시에 없던 것들이다. 또한 로마 시대에는 황제 외에 성벽 (성문) 안쪽에 개인 묘지 혹은 공동묘지를 만드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접근하기 편리한 이 군사 무역로 주변에 묘지 (지하 묘지 카타콤 포함)를 만들었는데, 이 아피아 가도 주변의 이 오래 된 묘지들은 현재 관광의 대상이 되어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이 로마로 들어갈 때, 백부장 율리오가 바울 일행을 로마 바로 아래 바다 항구까지 배로 운송하지 않고 로마와 250 킬로 떨어진 보두올 (Puzzuoli, 현재의 나폴리 바로 왼쪽에 위치한 옛 무역항)에서 육로를 이용하여 이동하였는가, 그 이유도 바로 그 사이에는 아피아 가도가 아주 잘 정비되어 있었고 로마제국에서 운영하는 정기 마차가 운용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첫 번째 사진이 로마 제국 본토의 군사무역로를 잘 보여주는데, 맨 우측 바다 쪽에서부터 이 길이 시작되어 로마로 향하는 것을 봅니다. 그 이유는, 당시 로마 제국이 오늘 날 터키 이스탄불 지역까지 뻗어있었기 때문에 동방 소아시아로부터 무역 군사도로가 출발하여, 마케도니아 (그리스)와 오늘 날의 불가리아, 알바이나, 그리고 크로아티아 서해안까지 이르게 되면 운송수단이 배 (선박)으로 바뀌었다가, 이탈리아 동해에 상륙하면 다시 군사 무역로를 이용하여 이동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 모든 길이 모이는 곳, 로마 광장 (포로 로마노Foro Romano)과 콜로세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