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성경지리 탐방 후기 (3) 및 선교 영상 세미나 개강 (2024. 2. 3. 토) 안내

세계를 품은 글로벌 크리스천, 복음의 동역자님께:

우리 주 예수님의 존귀하신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이방인의 사도 바울 선생님의 로마 여정 성경지리 탐방 후기 제3편에 앞서 지난 2개월 간 연말 연시 겨울 방학으로 쉬었던 “구글 MEET 선교영상 세미나” 개강 안내를 드립니다. 오는 토요일, 곧 2024년 2월3일 (미국 중부시간 아침7시, 서울 시간 밤10시, 브라질 시간 아침 9시)에 제13회 영상 세미나가 열립니다. 

이 유비쿼터스 영상 선교 세미나에 동참할 수 있는 접속 링크는 지금까지 사용해 온 동일한 링크인 https://meet.google.com/eip-bapy-jcf  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이 링크를 클릭하시면 곧 바로 영상 세미나로 연결됩니다). 이번 개강 (제13회) 세미나의 강사는 김용식 박사님 (킴미션 사역멘토, 풀러 선교대학원 선교학 박사, 미주장신대학교 박사원 교수, 브라질 상파울루에 거주하시며 남미와 한국과 전세계를 방문하여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이십니다. 우리 영상 세미나의 지도교수님이기도 하신 김용식 박사님의 개학 특강과 더불어 전 세계 각지역에서 동참하실 동역자 간의 교제 시간을 통해 서로 인사와 소개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많은 동참을 바라며 선교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누구든지, 세계 어디서든지 이 세미나에 참석하실 수 있습니다. 저에게 이 메일을 먼저 보내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으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번 목요일 저녁에는 앞으로의 강의 일정을 포함하여 이번 토요일 영상 세미나 안내 메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방인의 사도 바울의 로마 여정을 따라 간 성경지리 탐방 후기 (3)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사도 바울 선생님이 로마에 처음 도착한 시기는 주후 60년 경으로 봅니다. 사도행전 28장 마지막 부분에 기록된 것 처럼,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행 28:30~31), 처음 로마에 도착했을 때는 네로 황제가 이미 통치하고 있던 시기 (주후 54-68까지 통치) 였으나 아직 네로 황제와 로마 제국의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극심하지는 않은 시기였습니다. 로마의 기독교 박해는 로마제국 제5대 황제인 네로 때 시작되어 이른바 “10대 황제들의 박해”를 거쳐 주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적적이고 극적으로 개종함으로써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할 때까지 약 250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바울 사도의 첫 로마 도착 2년 간의 자유로운 복음 전파가 가능했던 기간 이후의 행적에 관해서는 목회 서신과 클레멘스의 ‘첫번째 서신’ (주후 96년 경 로마 교회 감독), ‘무라토리 단편’ (주후 170-180년 경),터툴리안의 글 (주후 200년 경), 그리고 유세비오의 ‘교회사’ (주후260년 경) 등 여러 신빙성 있는 교회 문서들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사도 바울이 첫 2년의 자유로운 사역 직후 곧 바로 네로 황제의 박해를 받고 순교를 했을 것이라고 짐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좀 더 시각을 넓게 해서 상상하면, 바울 선생님은 로마 황제의 법정 제1심의 결과 무죄 석방이 되었고 (주후 62년 경),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행 19:21)던 뜻을 이룬 그는 이제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롬 15:28) 던 소원대로, 로마에서 만난 성도들의 도움과 후원을 바탕으로, 당시 “땅 끝”으로 알려진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추측하는데 큰 문제가 없습니다. 오늘 날의 포루투갈, 실제로 리스본 근처 해안에는 이 서유럽의 “땅끝” 이란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데 저는 둘로스 선교선을 승선하기 직전인 1997년 여름 국제오엠 서유럽 단기선교여행 때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사도 바울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에서 복음을 전한 후 방향을 돌려 다시 동방 (마케도냐와 소아시아) 으로 향하였을 것이고,이전에 그가 1-3차 선교여행 때 전도하던 지역과 교회들을 재방문하였을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던 중 로마 제국의 반기독교 정책과 핍박이 점점 극심해 지면서, 로마 식민지 가운데 한 도시에서  다시 체포되어 로마에 호송되었을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봅니다. 그리고 이 두 번째 옥살이를 할 때는 첫 번째 로마 도착 직후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고, 네로 황제 치하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점점 심해지던 때라 로마의 지하 감옥에서 사슬에 묶여 습한 겨울 추위에 고생하며  갇혀있었습니다 (딤후1:16; 2:9; 4:13). 아래 인용하는 디모데 후서 본문을 사도 바울 선생님의 입장과 처지를 상상하면서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딤후4: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6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7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9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15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18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19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20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렀고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 21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22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찌어다.”

위대한 사도 바울 선생님도 여전히 한 연약하고 연로한 사람이었고 (바울은 예수님 보다 약5년 정도 나이가 적었고 처음 로마 도착 당시에 58-60세였으며, 두번째 다시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는 67-68세 경이었습니다. 그 나이에 그가 처한 환경을 감안하면 위의 본문에서 그가 주위 사람들을 향해 표현한 사랑과 기대와 실망과 안타까움이어떠했을지 짐작하라 수 있습니다 (로마 지하 감옥 사진 참조). 

하지만 이 모든 열악한 환경과 심지어 가까운 이들과의 이별과 믿었던 동역자의 배신조차도 연로한 사도 바울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언제 처형을 당할지 모르는 살벌한 옥중 생활 속에서도 그의 마지막 서신인 디모데 후서를 기록하였습니다.  디모데 후서는 첫번째 로마 도착 후에 썼던 디모데 전서에 비해 더 개인적인 내용들이 담겨있는데, 특히 바울 사도의 순교가 임박한 것으로 짐작되는 비장한 표현들이 나타납니다.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사명을 다한 바울은 이제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라고 고백하며 위협적으로 바뀌어 가는 주변 분위기에 대한 예감의 표현과 함께, 자신을 용서하시고 복음의 사도로 불러주신 주 예수님을 위하여 순교할 준비가 된 일사각오를 표현합니다.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성령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을 믿을 때, 디모데 후서를 쓰도록 하신 주 성령님께서 사도 바울 자신과 이 편지를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어떻게 순교할 것을 능히 짐작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후, 복음 전도자 사도 바울 선생님은 로마 시민에 대한 처형법에 따라 목이 잘리는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이는 다른 전설에 나타나는 사도 베드로가 이방인에 대한 처형법에 따라 십자가에 (베드로의 요청에 의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를 당한 것과 비교가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바울 사도의 순교한 시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추측이 있는데, 성경 말씀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이기 때문에 우리 개혁주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시기와 날짜 자체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 전해져 오는 이론들 가운데 하나는 주후 68년 6월 29일에 순교를 당했고, 그의 나이 67세 때였다는 전설이 있고, 현재 로마 교외 오스치아 가도(Via Ostiense) 에는 그가 처형되었다고 전해지는 장소에 웅장한 로마 캐톨릭 기념 성당이 있습니다만, 우리는 구태여 그 장소를 찾아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쯤에서 저는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목사로서, 우리 복음의 동역자님들을 위하여 꼭 언급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곧 우리는 오직 우리 주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주 성령님을 찬미하고 예배하며 전할 뿐이지, 성경 속에 등장하는 그 어떤 한 인물을 숭배하거나 거룩히 여기거나 영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특히 우리가 성경지리를 탐방할 때 주의해야 할 점들이 바로 비성경적인 어떤 인물 숭배, 특정 장소, 혹은 유물과 유골을 숭배하고 일부러 찾아가서 기도하는 것이 무슨 영적 육적 (치유적) 효험이 있는 냥 오해하거나 맹신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보다 전통, 전설, 그리고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어떤 인물, 유물, 유골, 특정 장소를 숭배하는데 더 치중하는 카톨릭의 신앙 방식이며 성지순례 방식인데, 오늘날 많은 개혁주의 신자들, 심지어 목사님들까지도 그들이 가는 곳에 몰려가고 그들이 하는 우상숭배에 가까운 행위를 멍하니 쳐다보거나 동참하는데 성경지리 탐방의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를 봅니다. 세상에 특별한 “성지(聖地)”, “성인(聖人)”, 혹은 “성물(聖物)”은 따로 없습니다. 거룩하신 분은 오직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 뿐이시며, 주 예수님을 믿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나 뭔가를 잘 모르는 이들이 생각없이 부르고 숭배하는 소위 “성인Saints”들 (St. Paul, St. John, St. Mark, 그리고 St. Francis 등등)도 모두가 우리와 동일한 죄인이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사도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음), 그들도 만약 예수님을 진실로 믿고 영접했다면 또한 누구나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보혈과 부활의 능력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어지는 이야기: 압비아 가도 상에 있는 지하 무덤 카타콤; 로마 광장 (포로 로마노), 콜레세움, 그리고 바티칸 박물관 탐방 등이 이어집니다]

– 김경환 목사 (킴미션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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