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수도 로마를 향한 이방인의 사도 바울의 여정 (2)

갈라디아서2: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시라쿠사 Siracusa (Syracuse): 바울의 시실리 (Sicily시칠리아) 도착 기항지

사도 바울 일행이 지중해에서 겨울 광풍 유라굴로 (북동풍Northeaster, a wind of hurricane force)를 만나 14일 동안 고통을 당한 뒤에 작은 섬 멜리데 (오늘 날 몰타 Malta공화국)에 상륙하여 3개월 간 머물게 됩니다. 몰타에 관한 이야기는 사도행전 28장에 자세히 나오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몰타를 꼭 한번 방문하고 나서 자세히 쓰고 싶습니다.

우리는 로마에서 시실리 섬의 최대 도시인 시라쿠사까지 잘하면 하룻 만에 운전하여 도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실제로 운전을 해서 내려가 보니, 나폴리 보다 더 남쪽인 살레르노 Salerno에서 하루 밤을 자고 아침 일찍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라쿠사에 도착한 시간은 석양이 막 저물어가는 저녁시간이었습니다. 이태리 본토와 시칠리아 섬 사이 메시나 해협 (the Strait of Messina) 양안을 배를 타고 이동하는데 시간이 예상보다 더 오래걸렸습니다. 시라구사는 아름다운 항구도시입니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제국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적 유산으로 가득하여 첫 인상은 물론 도시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올 때 느낌이, 이탈리아 로마 이남 지역 가운데서 가장 멋지고 귀족스러운 도시로 와닿았습니다. 실제 역사를 보아도 시칠리아 섬과 시라쿠사는 이탈리아 본토 보다 더 먼저 그리스 사람들이 들어와서 그리스 헬라 문명을 꽃피운 고급스럽고 귀족적인 도시였습니다. 지금도 시칠리아 섬 곳곳에 기원전 (BC) 헬라시대의 각종 신전들, 극장, 경기장, 그리고 고대 도시국가 시설들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이 로마제국을 점령한 이후에는 더 놀라운 발전과 화려한 문화가 시실리 섬에서 피어났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 일행이 정박하여 3일 간 머무른 시라쿠사 항구로 달려갔는데, 시라구사 항구는 여느 다른 항구들과는 전혀 다르게, 고급스런 주택이 빈틈없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골목골목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고 사도 바울 일행이 배를 타고 들어왔을 항구를 배경으로 서둘러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는 시라쿠사에서 하루 밤을 머물고 싶었는데, 다음 날 다시 본토로 건너와야 하는 여행 일정을 고려하여 그 이웃 도시인 카타니아 Catania에서 하루 밤을 묵었는데, 좀 더 많은 시간을 이 두 도시에서 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나는 시라구사 항구를 바라보며, 사도 바울 선생님이 그 멀고 험한 여정 끝에 드디어 로마제국의 수도를 향한 첫 항구에 도착할 때,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그는 그를 맞아 준 첫 기항지 시라쿠사에 도착하여 3일 간 휴식을 취하면서 이 땅과 이 곳 사람들을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했을 것입니다. 사도일행의 첫 기항지 시라쿠사와 시칠리아섬은 현재 인구 500만이 거주하는 풍요롭고 평화로운 축복받은 섬이 되었습니다. 복음이 그냥 지나가기만 해도, 그리고 그 복음을 들고 가는 사도들을 단 3일 동안 품어주었는데, 우리 주 하나님은 시칠리아섬과 그 첫 항구도시 시라쿠사에 복을 주시사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도시로 만드셨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이 상륙한 첫 항구라는 이유로 수 많은 로마 카톨릭 신자들이 이 도시를 더욱 선호하여 휴양지와 노후 거주지로 삼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 일행이 정박하여 3일 간 머무른 시라쿠사 항구로 달려갔는데, 시라구사 항구는 여느 다른 항구들과는 전혀 다르게, 고급스런 주택이 빈틈없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골목골목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고 사도 바울 일행이 배를 타고 들어왔을 항구를 배경으로 서둘러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는 시라쿠사에서 하루 밤을 머물고 싶었는데, 다음 날 다시 본토로 건너와야 하는 여행 일정을 고려하여 그 이웃 도시인 카타니아 Catania에서 하루 밤을 묵었는데, 좀 더 많은 시간을 이 두 도시에서 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나는 시라구사 항구를 바라보며, 사도 바울 선생님이 그 멀고 험한 여정 끝에 드디어 로마제국의 수도를 향한 첫 항구에 도착할 때,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그는 그를 맞아 준 첫 기항지 시라쿠사에 도착하여 3일 간 휴식을 취하면서 이 땅과 이 곳 사람들을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했을 것입니다. 사도일행의 첫 기항지 시라쿠사와 시칠리아섬은 현재 인구 500만이 거주하는 풍요롭고 평화로운 축복받은 섬이 되었습니다. 복음이 그냥 지나가기만 해도, 그리고 그 복음을 들고 가는 사도들을 단 3일 동안 품어주었는데, 우리 주 하나님은 시칠리아섬과 그 첫 항구도시 시라쿠사에 복을 주시사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도시로 만드셨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이 상륙한 첫 항구라는 이유로 수 많은 로마 카톨릭 신자들이 이 도시를 더욱 선호하여 휴양지와 노후 거주지로 삼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레기온 Rhegium (Reggio): 이태리 본토의 첫 기항지

사도 바울 일행을 실은 로마행 여객선은 시라쿠사에서 3일간 머문 후, 우리가 배를 타고 가로지른 그 메시나 해협을 역시 가로질러서 이탈리아 본토의 땅 끝에 해당하는 레기온에 도착하여 다시 하루 밤을 보냅니다. 레기온의 오늘날 지명은 레기오 (Reggio di Calabria 깔라브리아주의 주도시) 이며 이탈리아 본토의 고속도로의 종착점이기도 합니다. 여담이지만, 이탈리아의 고속도로 운영 방식이 아주 독특하였는데, 우리가 수도 로마를 출발하여 시칠리아로 건너가는 선착장까지 가는 동안 분명 대부분 고속도로를 이용하였음에도 내려가는 길에 단 한번도 고속도로 요금 정산소 (톨 게이트)를 보지 못했고 요금도 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칠리아로 건너가 시라쿠사까지 고속도로를 탈때는 시라쿠사 입구에서 요금을 받았고, 나중에 로마로 다시 돌아올 때도 고속도로 내내 요금을 받지 않다가 로마 입성 직전에는 요금을 받았습니다 (약20불). 그러니까, 대도시를 들어가는 길에 만 고속도로 요금을 받고, 나와서 지방으로 가는 방향의 고속도로는 요금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지난 해 그리스를 탐방할 때는, 모든 고속도로 매 10-20킬로 거리마다 톨게이트가 있고 요금징수원이 앉아서 통행료를 꼬박꼬박 받았는데 그 통행요금이 상당한 금액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8장13-14절에는 사도 바울 일행을 실은 배가 시라쿠사를 떠나 메시나 해협 바로 건너편 항구 레기온에 도착하여 하루를 묵었다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차를 배에 싣고 메시나 해협을 건넌 후 (돌아올 때도 배를 기다리고 타고 다시 내리는 시간이 약 2시간 30분 정도 소요), 곧 바로 레기오까지 달려갔는데 약 30분 정도 거리였습니다 (배 위에서 건너다 보이는 레기온 사진). 저는 레기온에서 사도 바울 선생님이 어떻게 하루를 보냈을까 생각해보았는데, 결론은 하루 종일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이제 곧 만나게 될 로마교회 성도님들을 생각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직분과 사명을 다시 새롭게 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보디올Puteoli (현재 Pozzuoli): 로마 입성 직전 최종 기항지

사도 바울 일행이 레기온에서 다시 출항하여 마지막 도착 항구인 보디올로 항해를 하는데, 사도행전 28장 13-14절에 의하면,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거기서 형제들 (성도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같이 로마로 가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번에 우리가 배를 타기 전에 알아보니 레기오에서 나폴리까지 가는데 배로 약10시간이 소요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엔진이 아닌 돛을 달고 바람의 힘으로 항해하는데, 레기온에서 보디올 (오늘 날은 보디올이 나폴리 바로 가까운 항구도시)까지 단 이틀만에 도착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풍이 북쪽으로 강하게 불어 항해하는 배를 밀어 올려 주심으로 (the south wind came up) 사도 바울 일행은 순풍에 돛단 배로 보디올에 도착하는데, 보디올은 그 당시 전 세계 로마제국의 주요 항구들로부터 여러 무역선과 농수산물 운반선이 도착하여 잘 놓여진 육로인 로마 무역로를 따라 수도권 일대로 물자를 실어들어가는 주요 항구였습니다. 참고로 오늘 날 나폴리 (Napoli, Naples)는 그 어원이 “네오 폴리스 Neo Polis (Neapoli)” 곧 “새로은 항구 (신항)” 이란 뜻으로 고대 로마 항구인 보디올 보다 늦게 새로이 형성된 항구입니다. 나폴리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이자 국어선생님이셨던, 낭만주의 문학가요 시인인 이명식 선생님께서 너무나도 자주 수업시간에 말씀하시던 “세계 3대 미항 (시드니, 히우데 자네이로, 그리고 나폴리)” 가운데 하나인 바로 그 나폴리였습니다. 당시 이명식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생전에 이 세계3대 미항을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시며, 대한민국에도 미항이 하나 있으니 곧 경남 충무 (현재 통영시)라고 하시면서 그 당시 시골 중학교 수학여행을 기어이 경남 충무와 부산으로 결정하여 우리를 데려가셨습니다. (*저는 당시 학급 반장이었고 “전교국어순화연구반” 반장이었는데, 1년 내내 이 선생님으로부터 엄청난 영향과 칭찬을 받으며 폴란드 작가 센키에비치의 소설 [쿼바디스]를 비롯하여 1백권 이상의 각종 세계명작을 그 한 해 동안 섭렵했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나폴리를 가서 하루 밤을 나폴리항 바다가 가까운 호텔에서 묵었는데, 시간이 충분치 않아 자세히 둘러볼 수는 없었지만, 나폴리가 지금도 세계3대 미항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고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보디올에 도착한 사도 바울 일행은 처음으로 그토록 소원하던 로마교회 성도들을 만납니다. 이는 분명히 예루살렘이나 소아시아, 혹은 바울이 지나온 지중해 연안 어느 도시의 성도들 가운데 바울의 로마행 소식을 편지로 미리 알려준 이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촘촘한 무역로를 따라 편성된 릴레이식 우편파발제도는 현재의 우편제도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신속정확했습니다 (Cursus Publicus: Roman postal system – the most highly developed postal system of the ancient world. The relay stages of the Cursus Publicus, established at convenient intervals along the great roads of the empire, formed an integral part of its complex military and administrative system, Britanica사전 인용).  드디어 바울 사도님께서 로마로 오신다는 소식을 접한 보디올 교회 성도님들의 환영을 받고 그들의 가정교회로 초청을 받아, 사도 바울과 그 일행들은 호송장교 율리우스의 허락을 받아 7일 간의 꿈같은 성도의 교제를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보디올에 도착했을 때도 해가 서쪽으로 멀리 보이는 그 유명한 화산 베수비우스 Vesuvius 산을 막 넘어갈 무렵이었습니다. 우리는 보디올 바닷가에 발굴된 옛 항구 유적지 앞에서 사진을 찍고 (보디올 사진) 한참동안 그 옛 보디올 항구 광장에서 반가이 서로를 향해 달려가 얼싸안고 “거룩한 입맞춤” (로마서 16:16, Greet one another with a holy kiss)을 나누는 사도 바울 선생님과 보디올교회 성도님들을 마음으로 그려보았습니다. 말할 수 없는 설레임과 반가움으로 오랜 시간을 기다려 마중나온 보디올 성도들의 감격, 그리고 하나님의 기도응답과 기적 같은 여정 끝에 사랑하는 성도님들을 만난 바울 사도 선생님의 기쁨은 과연 어땠을까요? 그리고 7일간 이어진 그들의 만남과 교제의 시간 시간들은 어떻게 채워졌을까요? 어떤 이들은 바울 일행이 이때 아마도 그 당시 최고 문명화된 도시 폼페이Pompei를 다녀오지 않았을까 상상하기도 하지만, 저는 사도 바울께서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고 믿습니다. 그는 차라리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예수님을 만난 자신의 간증과 놀라운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또 전했을 것입니다. 물론 로마교회 성도들 이야기, 그리고 그 당시 로마의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 모든 현황에 대해 듣고 로마 입성을 준비하며 기도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압비오 광장 (Forum of Appius)과 세개의 여관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마중 나온 로마교회 성도들

사도 바울 일행이 보디올에서 로마까지 가는 여정은 그 거리가 240킬로미터 입니다. 그리고 보디올에서 압비오 광장의 세개의 여관 거리 (삼관, Three Taverns)는 로마제국 최고 오래된 무역로 (포장된 고속도로)인 고대 압비아 가도 (Via Appia Antica)를 따라 가는 길가에 여관 세개가 모여있어 로마로 가는 여행자들이 쉬어가는 동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표현 (행28:15)으로는 “그곳 (로마)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나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했는데, 이 “세개의 여관” 동네는 로마에서 33마일 (48킬로미터) 지점의 압비아 가도 상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옛날 로마 무역로 상의 여관들은 숙식과 더불어 말 발굽을 갈아끼우거나 마차를 수리할 수 있는 시설과 인력이 상주하는 작은 도시 (마을)이라고 이해를 하면 됩니다. 우리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시골길로 몇 키로 벗어나서 옛 압비아 가도를 따라 가니 지도 상의 삼관이란 지점이 현재는 아담한 호텔 하나가 “압비오 광장 맨션 호텔 (Foro Appio Mansio Hotel)”이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호텔 사장님의 말로는 그 동네가 바로 압비오 광장 (Forum of Appius)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하면 마치 압비오 광장과 삼관이 다른 두 지점 같이 이해될 수도 있는데 직접 가보니, 압비오 광장은 그 동네 일대를, 그리고 삼관은 압비오 광장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보디올에서 7일 간 그곳 성도님들의 영접을 받으며 영육간에 회복한 바울 일행은 보디올에서 삼관까지 약 200킬로미터의 거리를 이동하던 중에 로마를 이제 1백2십리 정도 앞에두고 이곳 삼관까지 마중 나온 로마교회가 보낸 영접위원들을 만남으로써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기서 저는, 보디올에서 삼관까지 거리가 200여 킬로미터나 되는데, 어떤 방법으로 이동하였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에서부터 압송 중인 바울과 다른 몇몇 미결수들은 백부장과 그 병사들과 함께 이동 중입니다. 함께 여객선에서 내린 276명 가운데 다른 일반 승객들은 이미 시라쿠사와 레기온과 보디올에서 상당수가 여행을 마치고 하선하였을 것이며, 로마까지 가는 승객들도 상당수가 이들과 함께 육로로 가거나, 혹은 배를 타고 로마 바로 아래 항구 (로마시를 통과해 흐르는 테베레 강 입구)까지 다른 배를 타고 갔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바울 일행은 배가 아닌 육로로 이동하였는데, 제 생각에는 아마도 백부장의 판단 혹은 로마 친위대 사령부의 지시로 뱃길 보다는 육로인 압비아 가도 (당시의 고속도로)를 이용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이 거리의 육로를 단순히 걸어서 이동할 경우 배로 로마 바로 아래 테베레 강 입구까지, 혹은 테베레강을 따라 로마 시내까지 들어가는 것 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릴테니, 걸어서 이동했다기 보다는 당시 고속이동수단인 군사용 마차 혹은 승객 운송 및 우편물 운송 수단이었던 정기 운행 역마차를 미리 준비하여 그 마차를 타고 이동했을 것입니다. 말 여러 마리가 끄는 마차는 바퀴 높이가 1미터 50센티 이상이 되고 그 마차가 지나다닌 자국이 압비아 옛 무역로의 포장된 반석위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그만큼 많은 마차들이 압비아 가도를 이용했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서 삼관까지 48킬로미터를 만약 도보로 걸어서 이동한다면 군인이 아닌 일반인들로서는 도저히 하루 만에 주파할 수 없는 거리이지만, 만약 마차로 이동한다면 하루 안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에 로마를 하루 거리 앞둔 지점에 세개의 여관이 형성되어 있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 사도 바울의 로마 도착과 그 이후; 압비아 가도 상에 있는 지하 무덤 카타콤; 로마 광장 (포로 로마노), 콜레세움, 바울이 순교전에 갇혔던 것으로 여겨지는 지하 감옥; 그리고 바티칸 박물관 탐방 등이 이어집니다]

– 김경환 목사 (킴미션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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