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축복의 통로 – 복음의 동역자님께,
어느덧 시월의 한 가운데를 지나갑니다. 지나 온 한 해를 돌아보면서 새로 다가오는 새해를 준비할 시점입니다. 동역자 여러분께서 일마다 때마다, 주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아름다운 가을을 맞이하시기를 기도합니다.
1.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10월31일
시월 마지막 날, 1517년 10월 31일은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기독교개혁을 위해 95개조항을 비텐버그 교회당 입구에 게시한 날, 그래서 금년이 500주년이 됩니다. 신약성경으로 시작되었던 그리스도교는 1500여년을 지나는 동안 복음의 본질을 잊어버린 채 덕지덕지 온갖 인간적인 비본질적인 전통과 비복음적인 교리들로 왜곡되어 진리를 제대로 발견하기 어려운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수많은 당시 사람들은 마치 혼탁한 대기 오염과 부패한 제도의 먹구름 속에서 빛을 잃고 절망 속에 빠져있었지요. 그 때, 평소 성경말씀을 꾸준히 연구하며, 자기백성 독일인들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번역하는 방안을 (당시에는 라틴어 성경을 다른 쉬운 생활언어로 번역하는 일 자체가 불법) 고민 중이던 캐톨릭 신부 마틴 루터에게 하나님의 역사적인 영감과 지혜, 그리고 담대한 믿음과 용기가 임했습니다. 당시 1500년 묵은 교회는 개혁의 불씨를 애초부터 없애려고 온갖 악행과 고문 협박 그리고 살인을 자행하였지만, 그 서슬퍼런 개혁초기에 마틴 루터와 개혁자들을 도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온전히 바친 평신도 정치인, 군인, 지역 상인들, 그리고 인쇄 출판업 등에서 종사하는 각종 기술자들이 발을 벗고 나서 협력한 결과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경!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 (Sola Fide, Sola Scriptura, Soli Deo Gloria!) – 신앙개혁운동은 하나님 나라 확장과 성숙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됩니다.
한편 종교개혁운동이 뜻하지 않은 헛점과 역사적인 실수도 드러내었는데, 선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퍼스펙티브스 세미나 역사적인 관점에서 가르치는 내용들 처럼) 종교개혁 이후 약 300년 간 (윌리엄 캐리가 인도선교사로 출발한 1793년 한참 이후까지) 복음을 이방민족들 (당시로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등지)에게 전하는데 소홀하고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도 결정적인 개혁교회의 실수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당시 구제사업, 간호 및 영접사업 등에 활발하게 기여하던 수녀원을 해체하고 모든 수녀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것은 물론, 교회 활동 자체에서 여성들을 제외한 것도 기독교 복음의 실제적인 확산에 큰 퇴보를 가져왔습니다.
2. 신앙개혁의 현재성
세상적인 관점으로 보고 부르는 역사적인 사건이 “종교개혁”이라면, 우리 믿음의 관점에서는 Reformation을 “신앙개혁”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묵상하고 그 깨달은 말씀을 삶 속에 적용, 실천하며 증거함으로써 순간순간 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개혁신앙인의 자세와 삶입니다.
3. 오늘은 시월 세째 주일, 아름다운 주님의 날입니다.
저는 이번 주말이 병원당직근무가 없는 주간이라 오늘 오전 11시, 제가 자원봉사로 섬기는 교회 (OakHillsChurch.com)에 가서 한인그룹 성도님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성도의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오늘은 또한 제가 전도한 일본인 유학생 3명을 두번째로 초청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일본 오사카에서 8개월간 언어연수를 위해 약 한 달 전에 샌 안토니오에 온 이 대학생들은 약3주 전 내가 우버 택시 사역 (Uber Driver Ministry)을 하면서 만난 택시 고객들이었습니다. 우버 택시사역은 재정적으로 거의 도움이 되지않고 쉽지않은 노동이기 때문에 나의 컨디션이 영육간에 최상일 때 한 두 시간씩 전도하러 나가는 마음으로 가끔씩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때마다 당신이 예비하신, 내가 꼭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십니다.
이 세명의 일본인 대학생들은 모두 국제관계학을 전공하려는 대학1학년생들로, 이곳에 머무는 8개월 간 언어연수 과정 2학기 뿐만 아니라 최대한의 타문화 경험을 하기 원하는 매우 적극적이고 밝은 성격의 순수한 젊은이들입니다. 2주전 우리가 주일예배에 갈 때에 처음으로 기숙사까지 가서 태우고 우리교회 영어예배에 참석시키고, 예배 후 점심식사를 우리 한인그룹과 함께 하도록 초청하였는데, 한국과 가까운 일본에서 왔음에도 지금까지 한번도 한국사람, 한국문화와 접해 본 적이 없는 학생들이었습니다. 마침 우리 교회 윤장로님께서 강원도 (북한) 원산 출신으로 고등학교 때까지 일본어를 하신 분이라 반가이 대화를 나누시고 통역도 해 주셨고 아직 서툰 영어지만 일본 학생들은 열심히 영어로 대화하려 애쓰며 궁금한 것을 묻기도 하였습니다. 이번 주에는 우리 한국어 예배에 이들을 동참시켜, 영어예배와는 또 다른 우리 한국어예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주보도 한국어-영어-일어-한자 4개국어로 제작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우리교회 선교부장 육권사님은 기꺼이 예배 후 점심식사를 부페식당으로 가서 대접하시겠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 일본인 학생들을 위해 여러 환영사역 (Welcome Ministry)을 복음전도와 더불어 계획하고 있습니다.
4. 미국 속의 놀라운 선교기회, 병원사역은 계속 됩니다.
지난 주말 이틀 간의 당직에 이어, 화, 수요일은 제가 예비군으로 근무하는 통합병원 (San Antonio Military Medical Center; SAMMC)에서 이틀간 근무를 하였고 (예비군 10월 분 근무), 목요일 하루는 역시 제가 파트 타임 채플린으로 소속된 민간 병원인 침례교병원 Baptist Hospital system)에서 하루 근무를 하였습니다. (우버 택시는 지난 1주일 간 약 3시간 정도 운전했습니다).
목요일 침례병원 낮근무를 마치기 직전 시간, 마지막으로 여러 병동들을 한바퀴 순회하면서 직원들과 병실 복도에서 만나는 환자 및 가족들과 인사하는 시간에 우연히 만난 반가운 얼굴 – 바로 한달여 전에 만났던 50대 중반 여자 간암 환자의 오빠였습니다. 중후한 이 백인 신사는 나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얼싸안으며 반가와했습니다. 그 여동생 K는 주일학교 이후 단 한번도 교회를 나간 적이 없이 평생동안 알콜 중독에 시달리며 독신으로 살다가 결국 간암말기에 입원하였는데, 한 달 전 내가 오전에만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던 날 마침 멀리 미네소타 주에서 마지막 동생을 만나기 위해 문병온 오빠 부부가 채플린 방문을 요청하여 만났습니다. 오빠 부부는 신실한 크리스천들로, 평생 하나님을 거역하고 부인하며 살아온 동생이 예수님을 만나 구원의 확신을 가지도록 기도하는 가운데 채플린의 도움을 받기로 하였고, 특별히 나를 병원 채플(예배당)에서 먼저 만나 그 동생의 살아온 인생과 현재 상태를 설명하면서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의사가 말하는 대로 동생의 생명이 이제 2주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K가 여전히 하나님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도무지 믿음의 대화 자체를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병원 예배당에서 함께 간절히 기도하였고, 나는 곧 먼저 그 환자의 방으로 향했습니다. (오빠 부부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병실로 들어왔습니다.)
간암말기에 놓여 체중이 많이 빠져 나이보다 훨씬 더 들어보였지만 그래도 K는 전형적인 북유럽 미인 (Snow White Beauty)이었습니다. 나이가 나와 동년배여서 더욱 마음이 아픈 나머지 나는 K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며 나의 소개를 했습니다. 그러자 오빠 부부의 염려와는 달리, 그녀도 눈물을 글썽이면서 낯선 목사를 환영하였습니다. 대화 중에 그녀는 자기 아버지가 28년간 육군 특수부대 장교였으며 어릴때부터 너무 많은 이사를 다니는 바람에 학교와 교회에 잘 적응할 수 없었다고했습니다. 나 역시 육군 예비군 채플린이며 한국에서도 32년 전에 ROTC육군장교였다고 하니까, 이 자매님의 눈이 순간적으로 빛나며, 자기 아버지가 한국 전쟁 직후에 두 차례나 한국에서 근무를 하였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오빠 부부는 나에게 하지 않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K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아련한 주일학교 때의 기억이 순식간에 살아나는 듯 힘있게 대화를 이어가며 스스로 감격에 젖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 많은 죄 가운데 살아왔는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겠는가?’ 하는 절망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 그럼 나는? “나는 이 곳에 매일 근무하는 풀 타임 채플린이 아니다. 오늘도 나는 몇 주 만에 주중에 나와 단 4시간 일하는 파트타임의 기회였고, 지금은 바로 퇴근 한시간 전이다. 수많은 환자들 가운데 내가 이 시간 당신을 만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당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왜 하나님께서 한국인 목사를 당신에게 데려오셨는지 생각해 보라… 그리고 구원은, 우리의 행위나 공로 혹은 자격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의 우리 대신 죽으심과 부활을 믿음으로 얻는 최후의 완전한 승리이다.”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53:5-6). ..” 내 말을 들으면서 그 자매는 물론 뒤따라 들어온 그 오빠 부부도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졌습니다. 나는 그녀의 침대 곁에 오른쪽 무릎을 꿇었고, 그 오빠 부부도 병상 반대편에 무릎꿇어 모두 함께 손 잡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 기도 후 병실을 나올 때 그 오빠는, 이제 동생이 곧 세상을 떠난다는데 자기는 미네소타로 돌아갈테니,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지, 그때까지 하나님께서 목사님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겠다고 했습니다. – 그리고 약 한 달 후, 우리는 다시 우연히 만난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그 동안 간암말기임에도 불구하고 K는 기적적으로 호전된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가운데, 오빠 부부와 더불어 그 믿음과 소망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의 영적인 기쁨을 완전히 회복한 것이었습니다. K자매의 표정과 목소리는 훨씬 힘이 있었고, 더 이상 그의 얼굴에서는 두려움이나 절망 대신 기쁨과 쾌활함이 가득했습니다. “Pastor, I am no longer afraid!” (목사님, 난 더 이상 두렵지 않아요!)
5. KIM Mission 2017
이제 우리는 다시 다가올 2017년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사역 기회와 복음의 열매를 꿈꿉니다. 이를 위해 또한 하나님께서 새로운 개인 동역자님들과 동역교회들을 만나도록 인도해 주실 것도 소망 가운데 기도합니다. 우리는 현재의 재정후원 (매월1,100불) 보다 약200-300불이 더 확보되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교회들 역시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를 준비하는 기간에, 킴 미션의 내년 예산을 위한 기도제목도 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채워지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제 저는 주일예배를 위해 준비하고 교회로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역시 주일 아침 예배를 기대하며 교회로 향하실 동역자님들을 생각합니다.
한국, 아시아, 호주 그리고 아프리카와 유럽의 동역자님들은 복된 주일을 뒤로하고 평안과 감사가 넘치는 주일 밤을 맞이하시겠지요. 주 예수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간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