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첫 성 빌립보와 바울이 도착한 항구도시 네압볼리]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케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케도냐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케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스린 줄로 인정함이라.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에 도착하고.”
사도행전 16:9-11
사도 바울 일행의 2 차 선교여행의 특징은 바로 복음의 유럽 진출입니다. 위 본문을 전후 한 사도행전 16 장에서 우리는 “주 하나님, 주 성령님, 예수님의 영, 주의 영”께서 사도 바울을 더이상 아시아에 머물지 못하도록 막으심과 동시에 유럽을 향해 가도록 강권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이신 장소인 항구 도시 드로아는 옛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 트로이 목마 (Trojan Horse)의 배경이 되는 도시입니다. 이 항구도시 드로아는 소아시아에서 바로 건너편 유럽의 주요 도시 마케도니아의 데살로니가 혹은 빌립보로 갈 때 출발하는 주요 항구였습니다. 사도바울은 나중에도 이 드로아를 2-3 차례 더 방문하는데, 3차 전도여행 때는 이곳에서 1주일 간 머물며 하루는 밤새 말씀을 전하는 중에, 유두고 Eutychus 라는 청년이 3층 난간에 앉아 졸다가 떨어져 죽으나 바울의 기도로 다시 살아나는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성령님께서 바울과 그 선교단을 강권적으로 유럽으로 건너가게 하신 이 사건은 복음의 진로를 친히 결정하시고 이끄시는 주 하나님의 “서두르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땅끝까지, 하루 속히 복음을 증거하기를 원하시며 제촉하시며 때로는 강권적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도 바울 역시 이 성령님의 긴박한 지시를 깨닫고,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케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스린 줄로 인정함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만에 빌립보의 항구도시 네압볼리 (Neapolis, New City)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현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캐리의 좌우명이며 우리 킴미션의 표어 이기도 한,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들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들을 시도하라! 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는 말을 떠 올리게 됩니다. 네압볼리는 현재 그리스 북부, 곧 동부 마케도니아주에 속한 도시 카발라(Kavala)입니다.
이곳에 가기 전, 우리는 고린도에서 하루 밤을 묵은 뒤 그리스 서부지역을 관통하여 기암괴석 거대한 바위 산 위에 세워진 수도원들로 유명한 메테오라 칼람바카(Kalambaka, Meteora) 에서 하루를 보냈는데, 이 곳은 고속도로에서 한 시간 정도 엄청 높고 험산 산길을 달려야 도달하는 깊은 산중으로, 옛날 그리스가 수 백년 동안 옛 터키 무슬림 오토만 제국의 침입과 지배를 받을 때, 신앙의 박해를 피해 정교회 수도승들이 높고 험한 바위 산 벼랑 위로 올라가 고행하며 믿음을 지켰던 수도원들이 여러개 남아있습니다. 기기묘묘한 이 깊은 산속으로 세계 각처에서 수많은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찾아오는데, 우리가 방문한 5 월 초에는 아직 관광시즌이 시작되기 전이라 다른 대부분의 그리스 관광지들 처럼 한가롭고 여유가 있었습니다.
메테오라 수도원 지역을 벗어나 다시 그리스 국토의 1/4 정도를 차지하는 거대한 산맥 (해발 2,918 미터의 최고봉 올림푸스 산도 이 거대한 그리스 중부 산악지대 한 부분으로 동해안 쪽에 위치) 을 끼고 꼬불꼬불 조심스럽게 벗어나, 너댓 시간 북동쪽으로 운전한 끝에 드디어 그리스 북부, 곧 옛 마케도니아 지방 데살로니가와 네압볼리-빌립보 지경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스 북부, 곧 메테오라와 올리푸스 산을 품고 동서로 가로지른 높고 험한 산맥 북쪽은 옛 마케도니아 제국의 중심지인데, 산맥 남쪽의 그리스 (혹은 지금도 헬라 Hellas 라고 함) 지역보다 훨씬 비옥한 토지와 구릉형 산지들이 많습니다. 특히 떼살로니끼 Thessaloniki 는 옛 마케도니아 시대나 지금이나 이 지역의 최대 도시입니다. 그에 비해 빌립보교회가 있던 빌립파이 Philippi 지역은 옛 영화의 흔적만 남아있을 뿐 그저 평범한 시골마을의 모습이었습니다.
우선 우리가 하루를 묵은 옛 네압볼리, 즉 현재의 까발라 Kavala 도 제법 큰 도시인데, 왠지 그리스의 도시들은 하나같이 너무 도로가 좁고 주차공간이 없어 대부분이 일방통행길이며 길 양편에 주차를 하기 때문에 그 중간으로 소형차도 겨우 빠져나갈 정도의 도로 때문에 운전하는데 몹씨 신경이 쓰였습니다.
네압볼리는 옛 항구도시 답게 배가 들어오는 항구 언덕 위에 높은 성곽이 세워져있고, 부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골목 안에 사도바울의 역사적인 첫 도착을 기념하는 그리스 정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사진 위). 이곳을 잠시 가 보기 위해 우리는 약 300 미터 떨어진 골목에 겨우 주차를 하고 꼬불꼬불 골목을 걸어서 다가가 겨우 사진 몇장을 찍으며 2 천년 전 사도 바울의 유럽 입성을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 일행 (바울, 실라, 그리고 누가 등)은 이곳 네압볼리에 도착한 후 서둘러서 사십리 길 (15 킬로) 로마식 석조 포장도로를 이용하여 내륙도시 빌립보성으로 향했을 것입니다.
네압볼리에서 빌립보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제법 높은 산을 넘어가야 하고, 그 산을 넘자마자 약 10 킬로 이상의 넓은 내륙 분지가 펼쳐지며, 그 분지 끝자락에 높은 돌산을 등에 업고 옛 빌리보성 유적지, 그리고 바로 곁에 루디아 세례터 기념교회가 있습니다. 옛 빌립보성은 군사전략적으로 해안에서 떨어진 내륙에 위치하면서 그 뒷 산 위에는 수십리 밖을 내다 볼 수 있도록 성루가 조성되어 있는 모습이 고린도 성 등 다른 옛 로마 주요 성들과 비슷한 위치와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고고학적으로 발굴이 된 빌립보 성의 모습은 거의 파괴된 상태지만 그 전체 구조와 주요 시설들을 확인하고 짐작할 수 있는 정도인데 성내에 살았던 인구는 노예 2 천명을 포함하여 약 1 만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고린도나 세살로니가도 마찬가지였지만, 성곽 안에 거주한 사람들은 주로 로마시민권자, 군인, 공무원, 상인 등이었고 그 가운데는 역시 유대인들도 있었습니다. 성 주변 이,삼십리 평야에는 수 많은 농부들과 가축을 키우는 이들, 그리고 땔감을 공급하는 지역 주민들이 살았습니다.
로마 무역로 이그네티아 포장 도로 (Via Egnatia)가 통과하는 빌립보 성 내부에는 큰 노천극장과 시장 가게들로 둘러싸인 광장, 그리고 특히 기독교의 로마 국교화 이후에 주후 400-500 년 사이 건축된 크고 화려한 교회당 (바실리카 Basilica) 두 개가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던 흔적이 매우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두 개의 교회당, 곧 기독교가 한창 번성하던 기독교화 된 로마 제국 당시에 건축된 예배당과 부속 건물들의 흔적을 가까이 가서 보면서 느낀 것은 “슬픔”과 안타까운 탄식이었습니다. 그 예배당들은 한 마디로 너무 화려했습니다. 진정한 복음과 선교에 대한 열정은 없이 단지 화려한 건물과 형식, 그리고 금장식으로 차려입은 성직자들로 가득했던 로마교회. 빌립보교회 역시 그 부요함으로 인한 안도와 게으름과 타락의 길을 피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방 신을 섬기는 자들에 의한 철저한 파괴와 멸망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사도와 성도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세워진 빌립보 교회는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후 부요하고 평화로워지면서 전국민이 교인이 되고 노예들까지 강제로 교회에 무조건 등록됨으로 인해 또 다른 땅끝으로 복음을 들고 나가는 대신 게으르고 나태하고 방탕해져서 예배당 건물에 모든 재정과 노력을 쏟아부었고, 끝내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 막대기와 인생채찍,” 잔인한 이방인들에 의해 하루아침에 산산히 부셔지고 멸망당하게 됩니다. 로마제국 교회가 예배당을 “바실리카 Basilica”라고 부른 것은 “바실레이이아” 곧 “천국”을 이 땅 위에 재현한 건물이란 의미였으니, 예배당을 화려하게 지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지상천국이라고 지은 화려하고 장엄하였던 예배당들과 온 갖 비성경적인 성상들은 철저히 파괴되었고, 소위 100% 기독교인이던 시민들도 남김없이 그 예배당 마당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빌립보 옛 성터와 화려했던 흔적의 무너진 교회터들이 지금도 그 역사를 웅변하고 있었습니다. 성지 순례를 통해 우리는 그것을 보고 배우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들도 실용적인 교회당 건물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지나치게 화려한 예배당 짓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예배당 건물이 천국을 상징할까요? 우리에게 성공과 부귀와 재물을 주신 것은 흩어 구제하고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하라 하심인데, 우리 인간들은 그 재물로 자신이 마음으로 즐거워 할 수 있는, 자기 눈 앞에 화려하고 비싼 건물을 지음으로써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거라 착각하며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이끄심과 놀라운 역사, 성도들의 적극적인 영접과 뜨거운 열정과 순수한 헌신으로 시작되었던 빌립보가 어찌하여 이리도 처참하게 무너졌단 말입니까? 그렇게 선교에 앞장서고 칭찬 받던 빌립보 교회는 지금 흔적만 남은 채 슬픈 모습으로 우리에게 “제발 이렇게 되지않도록, 성경속의 빌립보 교회로 돌아가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옛 빌립보 성의 텅빈 광장에서 머리 숙여 기도한 후, 슬픈 마음을 안고 루디아가 사도 바울을 만난 장소를 찾아 빌립보 성 언덕 아래 강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빌리보 교회 루디아 집사님과 이웃 도시 베뢰아에 관한 내용을 나누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