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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Mission Update – 이사장 이취임식과 한국방문 보고 (2)

우리 주 예수님을 찬미합니다.
한국 방문 사역 보고 제2편입니다.

1. 양화진 절두산 선교사 묘역 방문

선교사로서 저는, 가능하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양화진/절두산 선교사 묘역을 방문합니다. 이번에도 서울 도착 이튿날인 10월8일 (토), 저녁에 있을 이사장 이-취임식을 앞두고 아침에는 우리가 묵었던 이사장 이원구 장로님 댁에서 가까운 금호동 대현산을 오르며 산책과 기도의 시간을, 그리고 늦은 오전 집을 나서서 지하철 2호선 합정역 7번 출구로 나가 걸어서 5분 거리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Yanghwajin Foreign Missionary Cemetery)를 찾았습니다. 몇몇 단체 방문자들이 안내자들의 설명을 들으며 선교사 묘역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나는 이번에는 주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선교사님들의 묘지와 묘비를 둘러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발걸음을 한강변 언덕쪽으로 옮겨 천주교 절두산 순교 성지 (Jeoldusan Martyrs Shrine)까지 걸어갔습니다. 개신교 외국인 선교사 묘원과 천주교 절두산 순교성지는 특정한 분리시설이 없이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는 절두산 순교지를 성지로 지정하여 전 세계의 캐톨릭 신자들의 주요 순례지가 되어 있습니다. 한국 개신교회 보다 정확하게 100년 앞서 복음을 받아들인 한국 천주교의 초기 역사는 우리 개신교 신자들에게도 큰 교훈과 도전을 주기 때문에 비 성경적으로 신성시하는 것은 피하더라도 선교와 교회 역사로 학습함으로써 유익을 얻고 후대에 전수할 필요도 있습니다.


2. 오랜 친구와의 만남(1)

양화진에서 곧 바로 양재 현대백화점 (옛 대성연탄/대성 백화점)으로 옮겨 나의 오랜 ROTC 친구들 가운데 한 사람인 박양규 사장을 만났습니다. 십여년 만의 해후. 강원도 양구에서 딱 하루 밤을 거의 꼬박 새다시피하며 나눈 우정이 36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역시 그 때 선후배로 만났다가  수 년 전 30여년 만에 박양규씨를 통해 다시 만난 이은재 사장은 대전에 살고 있어 이번에 함께 만나지 못하고 아쉬운 “이산가족 통화 같은” 화상통화만 나누었습니다.  아직은 덜 익은 고구마 처럼 완전한 기독교 신앙으로 들어오지 않은 나의 친구는 세상에 둘도 없이 정직성실하고 피를 나눈 형제보다도 더 지극한 사랑으로 나를 아껴줍니다. 나는 그에게 복음을 나눠주고 그는 신자요, 목사요, 선교사인 나에게 세상 모든 사람들의 관점에서 언제나 신선하고 예리하며 교회 안에서는 도저히 들을 수 없는 소중한 조언을 전해 줍니다. 이번에 만나보니 박양규 사장은 그 사업이 나의 고향 경북 의성까지 뻗어있어, 의성을 자주 왕래한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놀랍게도 제가 이번 한국 방문 기간 열흘 가운데 5일 간을 고향 의성에 내려가 고관절 골절 수술 후 한 달 만에 퇴원하신 92세 아버님을 곁에 모시고 “며칠 효도”를 하던 마지막 날, 박양규 아우가 의성읍에 업무차 왔다가 전화를 하더니 내 시골 집까지 선뜻 달려왔습니다. 마침 그날이 아부지와, 그리고 역시 며칠을 고향에서 함께 보낸 누이들과도 헤어지는 날이라 나는 기차표를 취소하고 친구따라 서울까지 올라가기로 하였습니다. 그의 한 주간 업무도 마감이 되는 날이라 회사가 있는 대전-공주-아산을 차례로 지나며 점심식사도 함께 하고 서울 구로역에서 그의 차를 내려 또 다시 아쉬운 별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쉼없는 대화로 서로의 이야기들을 실타래 풀듯 풀어놓았습니다. 그 기나긴 두 실타래는 한 순간도 한 매듭도 엉킴이 없이 서로의 마음 창고 속에 차곡차곡 레코드 테입이 되어 잔잔한 울림이 되고, 새겨지고, 저장되었습니다.

3. 오랜 친구와의 만남(2)

수많은 그리운 벗들을 제한된 시간에 다 만나지 못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하지만 하나님의 허락하심과 섭리 가운데 연락이 닿고 형편이 서로 맞아 만날 수 있을 때의 기쁨은 모든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습니다. 대구에서 아버지의 퇴원을 기다리는 하루 반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나는 최근 우리 킴미션 동역자로 헌신한 박한배 장로님 (대구 아멘교회, 대구 지산동 동아신경외과 원장, 기독교 생태-환경 단체 성서인문학 대표)과 부인 이은미 권사님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역시 십 수년 만에 만난 옛 대구남부교회 고등부와 대학부 선배요 오랜 친구 박 장로님과 권사님은 나에게 기대이상의 건강한 회상과 정서적인 회복, 그리고 그 두 사람 뿐만 아닌 나의 모든 아름다운 친구들과의 간접적인 만남을 제공해주었습니다. 형님처럼 친구처럼 나를 반겨 접대하고, 자신들의 친환경 주말 농장으로 함께 동행하여 한 나절 동안 나무를 심고 가을 채소밭에 퇴비를 뿌리는 일을 함께 한 후, 우리 셋은 팔공산 지장사 절골 소나무 숲을 등산하면서 두런두런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친구와의 만남은 고향과의 만남이요, 고향과의 마주함은 잃어/잊어버렸던 초심과의 만남이었습니다.

4. 대구 경북 선교의 산실 동산동 청라언덕 방문

지난 일이십년 간 대한민국 정부와 지방자치 정부들이 이룬 놀라운 업적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이 있다면 바로 숨겨져있던 역사적 유산유물들을 발굴하여 아름답게 드러내놓아 누구든지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내가 대구에서 머문지 이틀째 되는 날은 오후에 아버지 퇴원을 앞두고 주어진 짬을 내어 나의 옛 스승이신 대구남부교회 원로 신현진 목사님(82세)을 잠시 만나뵈었는데, 신 목사님과의 약속시간에 앞서 1시간 동안 내가 찾아갔던 대구 동산동 청라언덕에서 영남지역 선교역사와의 마주한 순간은 짧지만 아주 강렬한 통찰과 도전의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대구에서 선교사들이 세운 대학 계명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산동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건너편에 있어 걸어서 무수히 병원심방을 다녔던 대구서문교회 부목사로 6년을 섬겼지만, 사실 그 시절에는 이 역사적인 청라언덕을 지근거리에 두고도 한번도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구글 검색에서 청라언덕은, ‘대구주요 관광지이며 대한민국 구석구석 100경 중 하나. 대구경북 근현대사와 개신교, 가톨릭 역사를 볼 수 있는 유적. 청라언덕에는 선교사주택, 선교사 묘원, 3.1운동 기념개단, 영남최초 사과나무 등이 남아있다.

“청라언덕”이란 이름은 이은상/박태준 선생의 가곡 ‘동무생각’에 등장하는 지명으로 바로 대구 동산동 옛 선교사 사택들이 모여있던 언덕을 일컫는다. 청라(靑蘿)란 `푸른 담쟁이`를 말한다.’ 담쟁이 넝쿨은 여전히 선교사가 살던 미국식 오랜 붉은 벽돌집 주위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관광 목적의 방문자 몇몇 외에, 더군다나 코로나 사태로 굳게 닫혔고 적막하게 비어있는 낡은 집 몇채만 앞마당의 선교사 묘지와 더불어 남아있지만, ‘동무생각’의 작사,작곡가 이은상/박태준 선생들을 비롯한 수많은 근대 개화기 청소년들이 이 언덕을 방문하여 선교사님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과 조국의 미래를 꿈꾸었을 청라언덕. 마치 지금도 그들의 발자국 소리와 선교사님들의 어눌한 한국어 가르침 소리가 (나의 영어처럼) 집 안으로부터 흘러나올 것 만 같은 정취가 느껴졌습니다. 제가 강의하는 한국교회 선교역사 가운데 이 청라언덕에서 있었던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마가Mark’란 이름의 한 선교사님 가정의 개 이야기인데, 이 마가라는 이름의 개가 어찌나 주인의 성품과 생활습관을 그대로 빼닮았던지, 1900년 초기 영남매일신보에 난 기사에서 묘사하기를, 마가는 선교사님이 한국인 청년들과 함께 둘러 앉아 성경공부를 하고 함께 기도할 때면 언제든지 자기도 두 손 (앞발)을 모으고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함께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고 합니다. 마가의 주인 선교사님 내외분과 그 자녀들은 과연 어떤 분들이었을까요? 나 자신 역시 계명대학교 영문학과 학생으로서 당시 KABS (Korean American Bible Study)의 회원으로 그룹을 수십년간 지도하신 닥터 그랍(Grabb?) 목사님이 당신의 사택에서 인도하시는 매주 성경공부에 참석하였는데, 당시 그랍 박사의 사택은 이곳 동산동이 아닌 대명동 옛 캠퍼스에 있었습니다만, 모든 사람들에게 활짝 열려있던 그랍 목사님 댁의 그 따뜻한 분위기는 아마도 초창기 선교사님들의 청라언덕 분위기 그대로였을겄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전 세계 처처에서 우리 한국교회가 파송한 한인선교사님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사랑과 섬김의 ‘청라언덕’을 만들어 현지인들에게 동일한 복음과 추억을 나누어주고 있으니 참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선교역사는 아름답게 주님 오실 그날까지 이어지는 살아있는 하나님,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5. 대한민국 군선교의 큰 기둥 신현진 목사님

이 세상에서 나의 사랑과 존경을 가장 먼저 바칠 대상들 가운데 한분인 신현진 목사님은 제가 대구남부교회 대학부 1학년일 때 부임하셔서 26년간 담임으로 섬기시며 교회의 몇 갑절 부흥을 함께 이루신 분입니다. 제가 대학생활 자체를 유지하기 어려울 때 신목사님은 당회 장로님들과 의논하여 저를 교회 선교비 접수 담당이란 특별직책에 임명하고 매월 당시 3만원씩의 생활장학금을 지급하셨습니다. 학교에서 4년간 국비전액장학금과 성적장학금까지 받았어도 여전히 점심은 종종 건너뛰어야 하고, 어지간한 거리는 버스를 타지않고 걸어야 할 정도로 어려웠던 나에게 남부교회 선교장학금은 생명줄과 같았습니다. 신현진 목사님 내외분은 겸손과 온유와 섬김의 리더들이셨고 교회는 한 세대 동안 놀랍게 부흥하고 언제나 잔치를 치르는 가족처럼 즐겁고 북적였습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나의 비전과 섬김의 리더쉽 (visionary and servant leadership) 은 대구남부교회 대학부 4년간 훈련과 교회 어르신들을 따라다니면서 on-the-job training (현장학습훈련)을 통해 배우고 체득한 것입니다. 신현진 목사님은 담임으로 계실 때부터 군선교에 열정적으로 동참하시더니 은퇴하시고 원로목사가 되신 이후에는 완전 풀타임 자원봉사로 대한민국 군선교에 헌신하셔서 지난 십 수년간 체계적이고 엄청난 군선교 사역의 조직과 열매를 이끌고 계십니다. 이번에는 일정이 겹쳐 단 한시간 동안의 짧은 만남을 가졌지만 우리 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필요없었습니다. 청라언덕 남쪽에 뻗어있는 대동대서로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대구서현교회 교육관 8층에 제법 규모가 큰 군선교본부 사무실이 있었고 여러 다른 군선교사 목사님들과 스탭들이 분주히 일하며 새로운 군선교사 (민간인 군목) 후보생들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내가 이번에 신목사님을 찾아뵌 목적 가운데 하나도 앞으로 우리 킴미션이 조국의 군선교사역에 간접적으로나마 동참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신 목사님께서도 제가 미육군 군목으로 사역한 것을 감사하고 자랑스럽게 여기셨습니다.

6. 49년 전의 일기장

이번 고향집 방문은 13년 만이었습니다. 14년 전 나의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주님 품에 안긴 이후 두 번째로 어머니 산소도 찾았습니다. 고향의 산천도 몰라볼 만큼 변해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생전에 고이 겹겹이 싸고 포장해 두신 박스 다섯개를 참으로 오랜 만에 풀어 이틀간 정리하였습니다. 나의 옛 추억이 담긴 앨범과 일기장들을 수습하여 일부분 만 가져오고 꼭 보관해야할 것들은 다시 정리하여 누이 집에 맡겼습니다. 끊임없이 정처없이 이동하는 영적유목민의 삶을 사는 선교사를 주인으로 둔 나의 오랜 짐들과의 짧은 해후, 그리고 내 어머니의 손길과 기도가 담긴 나의 흔적들을 다시 누군가에게 맡기고 떠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 것을 가져갈까 망설이고 망설이며 고르고 고른 끝에 1973년 내가 5학년일때 시작한 내 평생의 일기장 제1권 (당시 고향친구 정지석 군이 나에게 선물한 5원짜리 공책)을 비롯한 몇 권과 사진첩에서 골라낸 몇장의 사진들 만 나와 함께 왔습니다. 지난 49년 간 나는 쉼없이 일기를 써 오고 있습니다. 금년에도 내달 11월 중에 이사장 이원구 장로님께서 해마다 해 오신 것 처럼 기독교 기업 <양지사>에서 발행하는 “윈도우Window 2023” 일기장을 구입해서 국제우편으로 보내주실 것입니다. 이 양지사 윈도우 일기장 만 사용한지도 1989년도부터이니 벌써 34년째 입니다. 이번에 나를 따라 온 49년 전 나의 첫 일기장은 바로 나의 “기록 본능과 그 동안 써온 모든 글들의 시발점인 셈입니다. 수 십권의 일기장을 시골 고향집 뒷방 한켠에 앉아 뒤적이면서, 혼자서 나는 웃기도 하고 소리없이 눈물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수많은 모습의 내가 주인공으로 그곳에 담겨있었고 수많은 내 삶의 순간순간이 내 손으로 쓴 글씨와 문장속에서 생생한 추억으로 나에게 되돌아왔습니다. 나의 꿈과 옛 친구들, 기쁨과 슬픔, 그리고 망설임과 두려움과 도전의 순간들이 거기 담겨있었습니다.

7. 사흘에 걸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하고 향하여 쓴다기 보다 어쩌면 바로 나 자신을 향하고 나 자신을 위해 쓰는 것입니다. 고향으로의 추억여행은 이제 다시 나에게 새로운 동력과 동기가 되어 미래를 향해 사명을 위해 계속 나아가게 합니다. 왜냐하면 이 추억여행을 통해 나는 언뜻언뜻, 그리고 문득문득 나의 평생에 한 순간도, 일기장의 단 한장 한줄도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음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지금까지도 따랐고 또)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아멘, 아멘!

* 킴미션 유비쿼터스 선교전략회의 (예비모임) 링크 정기 화상전략회의/세미나 예비모임에 동참하기 원하시는 분들은 오는 10월29일 토요일 한국시간 밤10시, 미국동부시간 아침9시에 있을 예비 교제 모임에 아래 링크를 통해 합류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https://meet.google.com/voc-icxr-uav

감사와 기도로,
바나바스김경환 선교사 드립니다.
www.KIMMiss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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