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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미션 업데이트(2022.9.4) – 신문광고 사진 추가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 – 월드 크리스천 복음의 동역자님께, 존귀하신 우리 주 예수님을 찬미하며 그 사랑의 이름으로 복음의 동역자님께 문안드립니다.

  1. 사역의 확장, 세상 속 더 낮은 곳으로

우리 킴미션의 주요 선교 모토 가운데 하나가  “세상 속으로! Go into All the World! (마가복음 16:15) 입니다. 제가 1997년 봄 한국에서 국제오엠 선교선 둘로스호 선교사로 파송받기 직전에 참석한 대구지역 선교대회에 주강사로 오신 분이 예수전도단YWAM창설자인 로렌 커닝햄 Loren Cunningham 선교사님이었는데, 놀라운 은혜와 도전의 말씀을 듣고 집회를 마친 후에 수백명이 길게 줄을 서서 커닝햄 선교사님의 싸인을 받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 당시 선교여행을 출발하면서 새로 영한 성경책 한권을 구입하였고 그 새 성경책 표지 안쪽 여백에 로렌 커닝햄 선교사님의 싸인을 받았습니다. 커닝햄 목사님은 자신의 싸인 바로 곁에 “Mark 15:16 (막15:16)” 이라고 써주었습니다.

나는 그날 이후에 마가복음 15장 16절부터 18절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마다 예수전도단의 총대 커닝햄 선교사님을 생각하게 되었고, 선교지 생활과 지금까지 25년 반을 선교사로 섬기면서 이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킴미션의 모토 가운데 하나인 “세상 속으로!” 역시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삶 속에 실천하는 가운데 나온 것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라고 번역된 한국어 성경은 엄청난 구호를 담고는 있지만, 영어 (NIV) 성경이 전달하는 이 구절의 실제적인 의미는 “세상 모든 구석구석 속으로 들어가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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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영장인 각 사람 가운데 아직 우리 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으며, 성 삼위 하나님께 예배와 영광을 드리지 아니(못)하는 개인들과 모든 민족들에게는 물론이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으심을 받은 모든 만물들을 향하여서도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고, 그 모든 만물들과 더불어서 주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우리 주 예수님과 주 성령님)의 이름을 부르며, 성 삼위 하나님께 예배와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바로 전도요 선교의 최종 목적 (문화명령 Cultural Mandate) 입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모든 사람/피조물 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하려는” 우리 킴미션에게 새로운 기회가 하나 더 주어졌습니다. 최근에 우리가 이곳 볼티모어에 이사를 온 이후, 잘 아는 선교사님 내외분의 소개로 이곳에 조그마한 규모의 “풍성한교회” (담임 윤병남 목사님)에 출석을 하게 되었는데, 출석 성도 30-40명 정도인 이교회는 어찌나 예배와 기도와 사랑이 뜨겁고 섬김과 선교에 열정적인지 일흔이 넘으신 담임 목사님과 모든 성도님들로부터 엄청난 도전을 (사랑의 섬김도 겸해서) 받고 있습니다. 이교회가 최근에 시작한 이웃 선교사역 가운데 하나가 볼티모어 다운타운의 이른 바 “절망의 빈민가”에 들어가, 그곳에서 빈민들과 각종 중독자들, 홈리스 들을 대상으로 구제사역을 하는 선교단체 “헤세드Hesed (하나님의 은혜, 자비, 긍휼을 뜻하는 히브리어) 선교회를 돕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부부도 첫 주말 봉사에 동참하여 음식과, 채소, 과일 및 옷과 이불을 나눠주고 섬기는 일에 동참하였습니다.

미국에서 흑인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들 가운데 하나인 볼티모어, 그것도 다운타운 중심 빈민가에는 참으로 구제불능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곳 빈민가에서 만나는 흑인들이 내가 섬기는 베테랑스 병원에 오는 참전용사들 특히 환자들 가운데 절반 정도 되는 최빈민층의 베테랑들이 바로 그 다운타운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 병원과 헤쎄드 선교본부 간의 거리가 불과 3-4마일 (5-6킬로) 밖에 되지 않으니, 병원에 왔다가 집으로 돌아갈 차비가 없다며 종종 채플린 사무실로 들어와 구걸하는 베테랑들과 그 거리의 사람들은 동일한 사람들 처럼 보였고 실제로 그럴 수 있습니다.

자꾸만 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헤세드 선교회를 이끄시는 목사님 내외분의 거침없는 헌신에 감동과 도전을 받은 우리 부부는, 원래 교회팀 봉사 계획이 없었던 지난 주말에도 스스로 찾아가서 너댓시간 동안 봉사하고 왔습니다. 이번에는 대표 목사님 내외분을 따라서 주말마다 빈민들에게 물품과 식품을 나눠주는 중간 기지에 가서 감자 주머니, 야채 박스 등을 먼저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문 닫은 옷가게의 남은 옷가지들을 3대의 소형 트럭에 싣고 와서 센터 창고에 다시 짐을 부리는, 시간에 쫓기는 매우 긴박한 작전에 동원이 되었는데, 무더운 날씨에 모처럼 온 몸이 흠뻑 젖도록 땀을 흘렸습니다.  이 단순한 섬김을 통하여 우리는 새삼 미국 사회가 얼마나 다양하며, 이 다양한 사회 계층이 서로서로를 돕고 가난한 자를 돌볼 수 있도록, 사회 복지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지에 대해 배우는 기회였습니다. 연방 정부 – 주 정부 – 시청 – 그리고 소단위 지역으로 이어지는 촘촘한 자원봉사, 크고 작은 여러 업체들이 자원 동참하여 팔다가 남은 물품 및 식품을 모으고 재분배하는 과정과 경로가 경이롭게 다가왔습니다.

미국에서는 한 마디로, 부지런하기만 하면 결코 굶주릴 필요가 없고, 부지런하기만 하면 저소득층이 어중간한 중산층 보다도 오히려 더 풍요롭게 살 수도 있습니다. 제가 병원에서 일하면서 보니까, 병원에서도 보통 중산층 환자들은 입원하기가 무섭게 한 나절이라도 더 빨리 퇴원하려고 (엄청난 의료비 부담 때문에) 서두르는데, 의료지를 아예 부담하지 않는 홈리스, 불법 이민자, 그리고 정부 지원을 받는 저소득층 환자들은 병원에서 나가라고 할 때까지 퇴원을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바로 미국사회입니다. 아무튼 우리 킴미션은 이제 기회가 되는대로 볼티모어 다운타운 헤쎄드 선교회로 가서 절망의 빈민가에서 허덕이는 이들에게 주 예수님의 복음과 천국소망을 나누어주는 일에 협력하려고 합니다. 할렐루야!

  1. 최근에 만난 한국전쟁 참전 미군 베테랑용사들

지난 2-3주 동안 저는 제가 사역하는 베테랑스 병원에서 4명의 한국전 참전 용사들 (Korean War Veterans)을 만나 귀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네 분 모두 89세에서 93세 사이 고령이신데, 이 가운데 흑인 참전용사 두 분은 안타깝게도 청력이 떨어지고 병환으로 인해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였고, 다른 두 분은 백인 할아버지들이신데, 두 분 모두 연세에 비해 무척 정정하시고 70여년 전 한국전쟁 중에 겪으신 일들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지난 12년 간 병원 채플린으로 미국사회의 핵심 주류 속에 들어가 사역을 하면서 저에게 가장 큰 보람과 축복의 순간들이 바로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만날 때였습니다. 우선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만나면 저 자신이 흥분되고 감격, 감사하게 됩니다. 십여년 전에 만 해도 한국전 참전 베테랑들이 제법 많았는데, 이제는 그분들의 연세가 최소 88세 (72년 전 1950년에 18세 나이로 미군에 입대 혹은 징병을 받아 한국전에 참전한 경우) 그리고 대부분이 90세 이상의 고령이시니 아주 드문드문 만나뵙게 됩니다.

2주 전에 만난 와이비 할아버지 (Mr. Weibe)는 입원 중에 제가 방문하여 대화를 하다가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사실을 듣자 말자 곧 바로 나의 손을 덥썩 잡으시고는 자신이 겪은 한국전쟁 이야기를 쏟아놓기 시작하셨습니다. 미스터 와이비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입대를 하였는데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곧 바로 한국으로 파병을 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와이비씨는 특이하게도 자신이 18세의 어린 병사로 겪은 전쟁의 참상보다는, 전쟁터에서 어쩌다 마주친 한국인 어린이들, 특히 주로 자신보다 몇 살 어린 나이의 소년 소녀들이 그렇게 측은하게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분은 전쟁 중에 찍은 한국인 청소년들의 사진을 나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하시더니, 퇴원 후에 일부러 다시 병원에 찾아오셔서 70년 이상 간직해 온 그 사진 몇 장을 제 사무실에 전해주고 가셨습니다 (*첨부한 사진들).  사진을 보면, 와이비씨와 함께 사진을 찍은 한국 어린이들이 마치 어릴적 저의 모습, 혹은 제 사촌 큰 형님, 누나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와이비씨는 지금까지 70년 동안 단 한번도 한국인과 직접 만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볼티모어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씨 (Washington DC)와 거의 붙어있는 이웃 도시이고 이 주변에 한국인들이 수 십만명이 살고 있는데도 와이비 할아버지 같이 한국인들과 교류가 전혀 없는 분이 있는 것을 감안 한다면, 아직까지 수 많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우리의 감사 인사 한 마디를 듣지 못한 채 별세하셨고, 지금도 그 숫자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것이 안타깝고 미안하기만 합니

다.미국인들은 와이비씨 처럼 자신이 아무리 훌륭한 일, 칭찬들을 일을 해도 그것을 자랑하기는 커녕 전혀 드러내지 조차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국 정부 혹은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과 한인교회들이 발벗도 수소문해서라도 찾아 나서지 않는 한 생존해 계시는 한국전 참전용사들도 와이비 할아버지 처럼 한분 한분 조용히 잊혀져 갈 것입니다 (fade away). 저는 와이비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사진을 가져다 주신데 대해 감사드리고, 다음에 진료를 받으시러 오시게 되면 꼭 저의 사무실에 오시고, 제가 사무실에 자주 없으니까,  비서에게 저를 찾아달라고 요청하시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병원 규칙이 입원환자와는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 정보 보호) 퇴원하신 상태에서 외래 진료를 받으러 오셔서 나와 만나게 되면 함께 사진을 꼭 찍고 싶다고 했더니 자신도 꼭 그리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두번째 백인 참전 용사는 바로 지난 주 금요일 아침, 제가 매일 아침 마다 업무 시작과 동시에 가장 먼저 방문하는 “당일수술 대기실” (Same Day Surgery)에서 만난 스톤 할아버지 (Mr. Stone)이십니다. 미스터 스톤은 그날 비교적 간단한 수술을 받기 위해 일찍 오셔서 준비를 마친 상태로 병상에 누워계셨습니다. 제가 이 시간에 하는 일은, 수술 대기 환자 한분 한분을 만나 그분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수술을 앞두고 긴장하거나 불안해 하지 않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간단한 인사와 이야기도 나누며, 요청하는 분들을 위해서는 성경말씀 (주로 이사야 43장 1-3절)을 소개해 드리며 손잡고 기도해 드립니다. 그런데 스톤 할아버지는 연세에 비해서 무척 젊어보이시고 기력이나 총기가 아주 좋은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분이 한국전 참전용사일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접근했는데, 이 할아버지가 갑자기 “채플린 킴, 당신 한국 사람이지요?” 하고 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 어떻게 아셨지요?” 했더니, 자신이 한국전 참전 용사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스톤씨는 말없이 제 손을 잡으시더니, 그 손에 엄청난 힘을 주어 자신 가까이로 끌어당기시는데, 그 눈에는 눈물이 금방 그렁그렁해 지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금새 그 분의 감동이 이심전심으로 와닿는 것을 느끼며 마치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감격이 일었습니다. 몇 마디 대화 가운데, 스톤 할아버지는 자기 평생 한국을 위해 기도해 오고 있으며, 한국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한국에 기독교가 놀랍게 부흥하는 모습을 보면서 누구보다도 기뻐하며 감사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 이런 분들의 희생과 사랑과 숨은 기도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 대한민국과 한국교회가 복을 누리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미스터 스톤, 당신이 70년 전에 전쟁 중인 한국에 오셔서 젊음을 바친 그 희생과 지난 70년 간 기도해 주신 그 사랑에 힘입어 지금 제가 이곳에 온 것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마침 마취의사가 들어오는 바람에 더 많은 대화는 못하고, 제가 할아버지 두 손을 마주잡고 간절히 기도를 드린 후 헤어졌는데, 감사하게도 그 분의 아드님이 가족 대기실 (Waiting Area)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든든하고 멋지게 생긴 50대 중반의 아드님을 만났더니, 아드님이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스톤 할아버지는 1950년 12월 중공군의 인해전술 대공세에 맞서 싸우다가 전쟁포로 (POW, Prisoner of War)가 되었고, 1953년 7월 휴전이 될 때까지 30개월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온갖 고생과 생명의 위협을 겪다가 포로교환 때 풀려났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톤씨 집안에는 그날 온 아드님과 그 아들의 아들 (손자, 현재 현역미군)까지 미육군에 자원입대하여 가문의 명예와 나라를 위해 바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더 많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만나뵙게 될지 알수 없으나, 기도하며 소망하기는, 우리 주하나님께서 부족한 종을 통하여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싸우신 참전용사들, 그리고 그 후에도 멀리서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기도해 오신 믿음의 기도 용사들을 한 분이라고 더 만나뵙고 그분들에게 지극히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진실로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우리 킴미션 동역자님들께서도 이를 위해 우리 킴미션과 부족한 종이 요긴하게 쓰임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와 기도로,바나바스김경환 목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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